남녀드립의 종결. 과연 그 끝은?
미취학 아동에게 여러 가지 색의 색연필을 쥐어주고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고르라고 하면 대부분 남자 아이는 푸른색 계열을, 여자아이는 핑크색 계열을 고른다고 한다. 왠지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남자는 남자의 틀에, 여자는 여자의 틀에 맞춰서 그 틀에 벗어나거나, 상대의 틀을 침범하면 안 된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강압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조선시대나 쌍팔년대처럼 남자는 무조건 ‘남자답게’를 규정짓는 세상은 지났다. 더 이상 아들딸 차별하지 않게 되었고, 딸이든 아들이든 평등하게 교육받고, 비슷한 조건으로 취직을 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모든 것이 평등해졌다. 하지만 오래된 관습이 법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서 손바닥 뒤집듯 쉽게 변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우리는 아직도 힘쓰는 일엔 남자를 찾고, 자잘한 집안일엔 앞치마 두른 여자를 더 익숙하게 생각한다. 남녀가 유별하다고 눈에 쌍심지 켜며 남자와 여자 역할을 나누던 곳에서 갑자기 여자가 남자의 역할을 해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게 되었으니 그 문화 충격은 실로 대단했을 것이다.
겉으로는 남녀평등이 실현됐다며 즐거워 하지만 사실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옛 관습을 아예 없었던 것처럼 무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불가능을 견디지 못하고 겉으로 표현할 수 없는 차별발언을 인터넷 상의 익명성을 이용해 배설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남자가 가장 볼품없어 질 때가 바로 누군가와 비교 당할 때라고 한다. 자신은 빵 반쪽을 들고 있는데, 상대방이 빵 한 덩어리를 들고 있을 때, 울고불고 떼쓰며 왜 자신은 작은 걸 갖고 있냐고 따지는 건 초등교육을 받지 않은 유아에게나 귀엽게 보일 일이다.
이제는 남녀평등이라는 말 자체가 구식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차별을 증오범죄를 취급하고 있을 정도로 누군가를 차별한다는 것 자체가 엄격하게 규제 되고 있는 상황이다. 피부색도 거의 다 비슷하고, 사용하는 언어도 비슷하고, 심지어 역사적으로 차별받던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니며, 땅덩어리는 미국의 1/100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에서 지역감정이 생기고, 남녀차별이 생긴다는 것은 조금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평생 여자와 담쌓고 살 생각이 아니라면 예민한 감성을 조금 유하게 풀 필요가 있다. 최근 신호등의 심벌이 남녀 차별이라며 그동안 혼자 굳건하게 서 있던 신호등의 로고를 남자와 여자 둘이 손을 잡고 있는 것으로 바꿨다는 기사가 나와 인터넷 상을 들썩이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빨간불에서 남자가 앞에 걸아가고, 치마를 입은 여자 로고가 뒤에 따라간다고 해서 다시 문제가 되었다. 결국 이 문제에 정점을 찍은 것은 솔로들의 항의였다. 솔로로 사는 것도 억울한데 신호등 까지 커플이냐며 들고 일어섰고, 결국 신호등에 남자와 여자가 함께 서 있는 로고는 유야무야 사라지고 말았다.
남녀드립에 대처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부조리함에 싸우는 것은 목적이 번듯하고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는 이슈가 있을 때 빛을 발할 수 있다. 세상엔 수많은 남자가 있고, 또 그만큼의 여자들이 있다. 이 수많은 사람들을 일반화 시켜서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정의 내리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길 바란다. 남자와 여자가 반으로 나뉘어 누가 더 옳고 누가 더 막장인지 따지고 있는 일은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뿐이다. 게다가 남녀를 나눠서 싸우는 모습은 그다지 매력 있는 모습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