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 적당히 배가 찬 느낌이 들면 스스로 알아서 음식량을 자제하거나 그 전에 자신이 먹을 만큼의 음식을 조금씩 담아 과식하지 않고 적당히 조절을 하며 먹으려고 한다. 아무리 산해진미,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평소 먹던 양보다 욕심을 내서 먹다보면 음식으로 행복해지는 것 보다 더부룩한 속과 지나친 포만감으로 자신의 몸을 괴롭히는 꼴이 된다. 어느 정도의 선에서 만족감을 찾는 것이 더 큰 만족감을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음식이 아닌 애정에서는 어떨까? 애정은 의식주만큼이나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삶의 필수 양분이다. 적당한 애정을 받고, 적당한 애정을 주기도 하면서 사는 것이 건강한 인생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과욕은 밥이나 애정이나 똑같이 사람을 괴롭게 만든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애정이 밥처럼 포만감을 느끼거나 직접적으로 자신이 과욕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다는 점에 있다.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매우 다양한 감정이 숨어 있다. 서로에 대한 배려, 존중, 아끼는 마음 등등 모든 좋은 감정은 다 숨어 있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랑에도 치명적인 단점이 숨어 있다. 끝도 없이 자신에게 관심을 갈구하는 집착과 집착에 따라오는 의심이 바로 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첫눈에 확 꽂히는 그런 사랑을 꿈꾼다. 가능하면 양쪽이 동시에 화살을 쏘듯이 꽂혀서 내일이라도 당장 신혼살림 차리고, 그동안 못 나눴던 사랑을 몰아서 나누며 평생의 동반자로 살아가길 바란다. 마치 전생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졌다가 끈끈한 인연의 사슬로 서로를 다시 만나, 이번 생엔 평생 서로를 불같이 사랑하다 죽으리라 하는 허황된 착각을 하는, 그런 인연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연애사업에 만족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충분히 사랑받고 있고, 또 사랑도 하고 있는데, 상상 속에서 이뤄지던 애정 어린 모습은 이보다 훨씬 깊고 애틋하기 때문에 좀 더 드라마틱한 러브 스토리를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니 현실적인 만남에서는 사랑을 아무리 받아도, 받아도 허무한 거대한 틈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만족할 수 없다면 아무리 배가 불러도 끝없이 식탐을 부리는 것처럼 애정과 관심 역시 스스로 만족하지 않는 이상 끝도 없이 요구하게 된다. 여자가 비싼 가방을 선물 받길 원하고, 데이트 비용을 모두 남자에게 떠넘기는 이유는 단순히 개념이 없어서 일수도 있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시각적으로 보고 느끼고 싶어서 이기도 하다. 남자 역시 여자의 지고지순한 희생을 요구하며 사랑의 흔적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무리 감정에 솔직하고 표현을 자주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속마음을 남에게 끝없이 보여주기란 한계가 있다.
만약 지금 사랑은 하고 있되 끝도 없는 허망함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면 혹시 과유불급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사랑을 많이 받아도 애정결핍이 생길 수 있다. 풍요속의 빈곤이라는 말처럼 사랑이 너무 흔하면 값어치가 떨어지는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자신의 가치를 흔하게 만들기보다 작은 마음이라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가슴 한쪽을 뚫어 버린 허망함을 채울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