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하고 경제에 조금씩 눈을 뜨다 보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일 년에 얼마를 버는 연봉이나 통장에 쌓아 둔 재산이 아니라 자신의 신용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금전적인 신용은 한 번 잃으면 인생 전반에 걸쳐 평가가 절하 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되도록 철저하게 지켜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금전이 아닌 인간관계에서 신용은 어떨까? 특히 연인 사이의 신용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사실 연인 사이만큼 믿음이 강조 되는 관계도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솔로의 남녀가 서로의 인연을 만들어가는 TV프로그램에서 처음부터 죽이 잘 맞는 천생연분 커플이 탄생했었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 할 만큼 급 진행된 이 커플은 마지막까지 하하 호호하며 손잡고 결혼식까지 달려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마지막 하루를 못 넘기고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바로 말 한마디로 시작된 거짓말 때문이었다.
거짓말도 아주 사소한 거짓말이었다. 바람을 피웠다거나 몰래 딴 생각을 한 것처럼 심각한 거짓말도 아니었다. 그냥 무의식중으로 말 한마디가 튀어 나왔고, 얼마 뒤 거짓말이라는 게 밝혀졌을 만큼 가벼운 말장난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잃어버린 신용은 다시 찾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거짓말을 한 사람은 한 사람 대로 자신의 신용을 되찾으려 노력을 했고, 상대방 역시 다시 한 번 믿어 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옛 말에 말이라는 것은 바닥에 흘린 물 같아서 입 밖으로 뱉고 나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고 했다. 그만큼 말에는 신중을 다 해야 한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거짓말조차 사랑해 줄 수 있는 상대방을 원한다. 진짜 사랑한다면 그 정도는 믿어줘야 하는 거 아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지만 그냥 덮어 놓고 믿어 줘! 라고 당당하게 말을 하기도 한다.
결혼을 약속한 커플이 있었다. 이 커플은 서로 너무 다른 성격을 갖고 있었는데, 남자는 자신의 생일도 기억 못할 만큼 털털한 성격이었고, 여자는 매일 시간 별로 일기를 쓸 만큼 철저하고 명확한 성격이었다. 서로 다른 만큼 맞춰가는 재미가 있었고, 다른 연인들과 다른 묘한 매력도 있었다. 하지만 이 남자에게는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집에만 들어가면 연락이 아예 두절 되는 것이었다. 여자가 아무리 설득하고 달래 봐도 남자는 집에 가는 순간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지 않았고, 직업의 특성상 매너모드에 고정이 되어 있어서 아무리 울려도 핸드폰 울림이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게임을 좋아해서 주말 내내 게임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주말 약속을 잡기도 어려웠다.
여자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되도록 집에 가기 전에 약속을 잡았고, 남자의 스케줄에 맞춰 데이트를 했다. 처음엔 불편하던 것이 점점 익숙해 졌고, 주말과 퇴근 후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장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남자는 연락이 되지 않는 것 이외에는 철저하게 자신의 신용을 지켜주었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진실 되게 말을 했고, 너무 솔직한 탓에 여자에게 속마음을 모두 들킨 적도 있었다. 여자도 이런 남자를 믿어주었고, 둘은 점점 더 깊은 관계가 되어 갔다.
하지만 이런 철저한 신용 사이에도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전화에 낯선 전화로 문자와 전화가 쏟아지면서 모든 진실이 밝혀졌다. 이 남자는 사실 털털하고 빈틈 많은 남자가 아니라 철저하게 자기를 숨기는 무시무시한 남자였던 것이다. 그녀에게 걸려온 전화는 남자의 정체를 밝히는 여자의 전화였고, 이미 수십 명의 여인들이 그의 어장 속에서 자신이 진짜 여자 친구라고 착각을 하고 팔딱 거리는 한 명의 흔한 여자1, 2였을 뿐이었다.
상대방에 대한 신용이라는 것은 이렇게 너무 철저하게 지켜줘도 문제가 되곤 한다. 너무 철저하게 자신을 믿어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은 의심의 눈으로 철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