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연애에 중독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래를 들어도, 영화를 봐도, 소설을 읽어도 사랑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사랑을 하지 않으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 취급을 받는다. 사랑과 연애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고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지는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연애를 하고, 사랑에 빠져야 하는 걸까? 만약 그렇게 흔하고 쉬운 거라면 왜 사랑 앞에 좌절하고, 사랑 때문에 절망하는 사람이 생기는 걸까?
우리 주위엔 어렵지 않게 연애 불감증에 빠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새로운 사람 만나기가 힘들고, 귀찮고, 연애를 이어나가는 밀고 당기는 심리 싸움이 지치고 귀찮을 때, 사람들은 그냥 사랑이라는 감정을 잠시 접어 두고 그런 감정싸움을 안 해도 되는 솔로의 길을 걷고자 한다.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감정을 일방적으로 똑같이 통일해야 하는 기계적인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솔로로 살든 연애를 하며 살든, 전국, 전 세계 방방곳곳으로 문어발을 뻗치고 살든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고 산다면 하등의 문제가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문제는 자기가 어떻게 살든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과 똑같은 생각을 공유 하고, 같은 삶 속에서 유대감을 느끼며 살고 싶어 한다. 왠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주위엔 나와 비슷한 사람이거나 나보다 아주 약간 부족한 사람과 친분을 유지하며 살기를 원하고 있다. 때문에 연애를 잘하는 사람들 주위엔 연애에 중독된 사람만 바글바글 하고, 반대로 연애에 완전 젬병인 사람들 주위엔 온통 솔로 부대만 포진하고 있게 된다.
이들에게는 열성과 우성 유전자를 나누고 저울질 할게 아니라 이들 중에는 연애 못하면 죽을 만큼 힘든 사람이 있고, 연애보다 혼자 노는 게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요즘은 초식남, 건어물녀가 전 세계를 아프리카 초원으로 만들어 버리고, 한반도를 비린내 진동하는 건어물 시장으로 만들만큼 흔한 세상이다. 초식남이라는 이미지는 왠지 풀만 먹고 사는 초식동물, 육식 동물의 먹이가 되는 약자의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초식남이 힘이 약해서 초식이 된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냥 연애가 귀찮고, 연애보다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게 더 좋은 사람은 자발적인 초식남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선천적 연애 불감증의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다. 이들에겐 보통 연인들의 달달한 연애를 상상할 수 없다. 남들은 하루에도 몇 통씩 카톡을 보내고 전화를 하고, 하루에 한 번씩 만나서 데이트를 한다는데, 이 사람은 전화도 없고, 만나도 딱히 스킨십도 안하고, 진짜 자길 사랑하는 건지, 연애를 하고 있는 건지조차 애매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자기애가 강하고, 연애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겐 문자 한 번 보내는 게 매일 일기 쓰는 것보다 더 귀찮고 짜증나는 일일 수 있다.
이럴 땐 이 무딘 사람을 평범한 보통 사람들처럼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한발 물러나서 이 사람이 뭘 원하는지, 어떤 행동을 할 때 편하게 자신의 마음을 여는지 파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르쳐 줘야 할 것은 연애의 자잘한 스킬이 아니라, 세상은 아무리 능력 있고, 혼자 놀기 좋아해도 절대 혼자 살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인식 시켜 주는 것이다. 혼자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남들에게 부담을 주진 않을까 눈치 보는 경우가 많다. 만에 하나 이런 사람을 좋아하게 됐다면 그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자신감을 키워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런 자잘한 엄마 노릇, 아빠 노릇이 싫다면 감정이 깊어지기 전에 고이고이 마음을 정리하고 그냥 제 멋에 살도록 놔두는 것이 서로의 정신 건강을 위해 좋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