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이 세상엔 커플이 넘쳐날 정도로 많고, 그만큼 연애 스타일도 다양하다. 그렇다면 이별은 어떨까? 가슴 아픈 이별, 눈물 나는 이별, 짜증나는 이별 등등 이별도 연애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가장 대중적인 이별 방법은 비 오는 날 어두컴컴한 가로등 밑에서 여자는 우산을 쓰고, 남자는 독한 산성비를 맨 머리로 맞으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빗물로 가리고, 내가 널 너무 사랑해서 이별하는 거야, 식의 저렴한 대사와 함께 연출하는 이별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늘 이런 영화 같은 방법으로 이별을 할까? 대중적인 이별 방법이라고 해서 대부분이 이런 이별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이별도 결국은 인생의 한 과정이라고들 말한다. 불같았던 첫사랑을 어리바리하게 시작해서 잿더미만 남긴 채 끝을 내고, 그 후에는 자기 자신을 조금 아껴 가며 마음을 열어주게 된다. 우리는 조금 철이 들면서 부터 어른스러운 연애를 시작한다. 단순히 육체적으로 어른스러운 연애가 아닌, 감정적으로 자신을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연애에서 품위를 찾게 된다는 뜻이다. 사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을 하고, 감정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품위와 방정이 끼어드는 것만큼 재미없는 것도 없다. 사랑이라면 무조건 물고 뜯고 부딪치고 엉켜야 그 속에서 정도 생기고 속마음도 아는 법이다.
이런 품위 있는 어른들의 연애 놀이에 빠진 남자와 여자들은 이별에 대하는 자세마저도 어른스러움을 추구한다. 울고불고 매달리고 뿌리치는 행위는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냥 조용하게, 서로의 마음이 멀어졌음을 인식하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별을 하는 게 어른스러운 이별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런 가식적인 이별이 실제로 가능할까? 어느 날 갑자기 사랑했던 연인의 전화가 줄어들고, 통화 시간이 짧아지고,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묻던 문자가 사라졌다. 이럴 땐 자신이 어른이라고 착각을 하고 일방적으로 마음 정리를 하는 사람과 달리 이별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사실 상대방에게 이별을 당하는 사람의 기분은 무슨 말을 하고 변명을 해도 좋아질 수가 없는 더러운 기분이 든다. 이걸 대답도 없는 전화를 붙들고 하소연을 해야 하니 얼마나 속이 상할까.
보통 이런 경우 눈치가 좀 빠른 사람은 흩어졌던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조용히 헤어짐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랑에 상처를 받고 이별 앞에서도 바다 같은 포용력을 지니고 있었다면 세계의 분쟁은 왜 있었고, 전쟁과 평과는 왜 반복 되었겠는가.
결국 혼자 이별을 결심하고, 통보 없이 잠수를 탐으로써 어른스러운 이별을 만들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앞가림조차 할 줄 모르는 팔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은 사랑다워야 사랑이고 이별도 이별다워야 이별이다. 전화로 ‘우리 헤어져’ 라고 이별통보를 하는 사람을 우리는 천하의 쓰레기라고 말한다. 만약 전화조차 없이 ‘우린 이미 헤어진 거야’라고 마음 정리를 한 사람은 쓰레기만도 못한 멘탈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아무리 불같은 사랑을 피워도 언젠가는 이별을 경험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휘둘리곤 한다. 이렇게 사랑하고 좋아하고 행복해도 결말이 얼마나 가슴 아플지 조금씩은 예견을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받을 이별의 고통이 두렵다고 해서 아무 말 없이 도망간다면 그 고통은 결국 다른 사람의 가슴에 대못으로 남게 될 것이다.
물론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사라져 주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이별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자기 자신을 남보다 좀 더 사랑했던 철든 어른들의 관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성숙한 사랑과 이별을 원한다면 그만큼 덜 사랑하고 덜 빠지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어정쩡한 관계를 누가 좋아라 하겠는가. 그냥 눈 감고 불길 속에 빠지듯 서로에게 빠져 들어갈 때가 가장 행복한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