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과 만나고 또 굉장히 쉽게 헤어지곤 한다. 법정스님이 남기신 에세이 중에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책이 한권 있다. 이 제목의 뜻을 풀이하면 일생의 단 한번 뿐인 만남, 일생에서 일어나는 단 한 번의 기회라는 뜻인데, 쉽게 말해 우리가 지금 만나는 사람은 우리 일생에 단 한번뿐인 만남의 시간이고, 지금 다가온 기회 역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한 번 뿐인 기회이므로 그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막상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가 깊어지다 보면 지금 당장의 만남에 조금 소홀해 질 때가 생기기 마련이다. 어차피 오늘 좀 부족해도 다음에 만나서 잘 해주면 되겠지, 자주 만나는 사이니 조금 서운하게 해 주어도 될 거야 라는 생각을 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잃게 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 인연은 자신의 의지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평생을 만나며 친하게 지낼 사람이라고 여겼던 사람이 오늘 헤어진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못 만나게 되는가 하면, 이 사람은 절대 다시 보지 말아야지 하던 사람이 수년, 수십 년 동안 질긴 인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 만나는 인연을 조금 특별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지금이 세상 마지막 날처럼 사랑하고 아껴주어야 훗날 후회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첫사랑의 기억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처음 경험한 가슴 떨림이나 감정들을 생각해 보면 큰 사고가 있지 않는 이상 자신의 의지로 잊기란 불가능 할 것이다. 그렇다면 첫사랑을 제외한 이성 중 가장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는 경우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강렬하게 사랑을 나눈 사람, 혹은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해서 만족스러운 연애를 했던 상대를 평생 잊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영국의 한 신문사에서 5, 60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평생 잊지 못할 연인에 대해 설문조사 한 일이 있었다. 그 결과 매우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가 오랫동안 기억을 하고 추억에 잠기는 상대는 첫사랑도, 완벽한 사랑도 아닌, ‘잘 될 뻔했던 사람’ 이라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더 이상 연애의 애틋함을 기억하지 못할 때쯤이 되면 지금 결혼한 상대가 아닌 과거 잘 될 뻔했던 사람을 회상하며, 그 때 그 사람과 결혼했으면 내 인생이 조금 더 행복했을지도 몰라, 혹은 지금보다 덜 고생하며 살지도 몰라 하며 아쉬워한다는 것이다.

지금 아내보다 좀 더 좋은 배경이 있었던 여자, 지금 연인보다 자신을 좀 더 잘 이해해 주었던 여자, 나쁘지 않게 헤어졌으니 잘만 하면 결혼까지 가능했을 거라 생각되는 이성을 회상하며 시궁창 같은 현실을 원망하는 것이다.

설문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그 때 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은 어떤 인생을 살까 궁금할 때가 있어요. 가끔 지금 아내와 대판 싸움을 하고 나면 과거 잘 될 뻔했던 그녀가 격하게 생각나곤 하지요.’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다지 로맨틱한 기억은 아니다. 게다가 현실에 어떠한 도움을 주지도 않는 백해무익한 추억일 뿐이다. 아무리 지금 옆에 있는 인연보다 조금 더 좋았던 과거 연인을 회상해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고, 옆에 있는 연인은 이혼이나 이별을 결심하지 않는 이상 평생을 함께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과거를 후회하며 살아가곤 한다.

어느 누구도 일절 후회 없는 깨끗하고 완벽한 과거를 살아오지 않았다. 어차피 사람은 다 비슷비슷하다. 과거에 대한 환상으로 현실을 부정하고 싶다면 그 사람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거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오래 만나고 오래 사귀다 보면 결국 그 사람이 그 사람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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