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가장 사랑하는 시인, 천재적 감성을 가졌지만 끊임없는 지적 탐구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인간적인 청년. 시인 랭보는 한 줄의 글로, 장문의 설명으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의 마술사이자 혁명적인 천재였다.
시인 랭보는 그의 천재적 재능만큼 골이 깊은 삶을 살아왔다. 그의 시를 읽는 사람들은 시인을 신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이 신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고민하고 사유하는 존재가 바로 시인이라는 것이다. 그런 시인에 가장 밀접한 인물이 바로 랭보가 아닐까 싶다.
군인인 아버지와 지주의 딸이었던 어머니의 밑에서 태어난 랭보는 어려서부터 책에 파묻혀 사는 공부에 미친 인물이었다. 늘 책을 읽고 글을 썼으며 학창시절엔 뛰어난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단순히 모범생으로 묶어 두기엔 그의 마음속 깊이 휘몰아치는 방랑과 자유의 뜻이 너무나도 강했다. 그는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반항적으로 변해갔다. 그를 억압하는 그리스도교와 부르주아 도덕에 혐오감을 느낀 그는 집을 떠나 방랑생활을 즐기며 자신의 철학과 깊은 사상이 담긴 시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랭보는 흔히 견자(見者)의 시인이라 불린다. 즉 남들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알아보는 시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시인이라면 무릇 우주의 모든 것을 투시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 했다. 천리안을 갖고 세상 만물을 볼 줄 알아야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늘 새로운 세계를 갈망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찾기 위해 세상을 여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랭보의 이런 갈망은 단순히 세상을 향한 호기심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의 반항심은 이런 욕구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을 위해 환각제를 사용하기도 하고, 초감각 능력을 위해 착란과 지각능력을 떨어뜨리는 위엄을 감수하기도 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끊임없는 호기심은 그에게 새로운 사랑, 동성애에 눈을 뜨게 했는지도 모른다.
랭보의 천재성을 높이 사고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 인물이 바로 시인 폴 베르렌느였다. 폴은 랭보와 함께 벨기에와 런던을 방랑하며 사랑과 예술을 찾아 헤맸다. 랭보의 시에 대한 과감한 도전과 그의 아름다움, 젊음에 취한 폴은 우정을 넘어선 진한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는 동성연애가 법적으로 불가능한 시기였다. 동성애를 한 사람들은 지위를 박탈당했고, 감옥에 수감되어야 했으며, 심지어 강제로 종교적 윤리 교육을 받아야 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폴과 랭보의 사랑은 이런 법률적 잣대로 막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폴의 앞을 막은 것은 그의 아내도, 법도 아니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청년이자 그의 사랑하는 연인은 모든 속박에서 자유로운 인물이었다. 아내를 버리고 랭보와 동거를 시작한 폴은 랭보를 만나기 전부터 술에 의존한 삶을 살고 있었다. 둘의 삶은 점점 피폐해졌고, 경제 사정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갔다. 이런 악순환이 결국 둘을 막다른 길로 인도했다.
랭보와 폴에 대한 소문은 파리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퍼져갔다. 폭음과 방탕으로 점철된 둘은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며 끔찍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폴에겐 사랑하는 연인의 천재성마저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1873년 6월, 술에 취한 폴이 랭보에게 총을 겨누었다. 총알은 랭보의 손목을 맞추었고, 술에 취한 폴은 랭보에게 총을 건네며 자신을 쏘라고 울부짖었다. 랭보가 그를 피해 병원을 향하는 길에 폴은 다시 그의 뒤를 쫓아 이번엔 그의 발등을 쏘았다. 천재 시인과 그의 연인의 처참한 이별이었다.
그 후 폴은 2년의 형을 받고 감옥에 수감된다. 그리고 37의 짧은 생을 살았던 랭보는 시 쓰기를 포기하고 아프리카와 중동을 여행하며 열정적이었던 유년의 방랑기를 끝내게 된다.
흔히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그들의 노력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재능에 더 빛을 보기 마련이다. 99퍼센트의 노력이 1퍼센트의 재능을 천재로 이끈다고들 말하지만 천재들의 노력은 그들만이 할 수 있는 강력한 재능 중 하나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천재가 하는 노력과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노력은 그 무게가 다른 건 아닌 가 의심해 볼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