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기 있는 드라마에서 인어공주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인어공주가 인류 최초로 세컨드, 즉 정부를 주제로 한 동화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인어공주가 사랑한 왕자에겐 정혼녀가 있었고, 인어공주가 사람으로 변해 왕자에게 등장한 순간은 왕자가 정혼녀와 결혼을 한 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화 속에선 왕자가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를 매우 아꼈고, 왕자의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인어공주가 왕자의 정부로 보일 수도 있었다. 글쎄, 목소리까지 잃고 사람이 된 인어공주가 졸지에 정부가 된 자신의 신세를 비관해 자살을 했다고 해도 크게 이상하진 않을 듯싶다.
우리는 이런 이뤄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몹시 사랑한다. 신화를 보거나 유명한 고전문학을 봐도 그렇다. 남녀가 첫눈에 반해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 낳고 잘 사는 스토리는 인기가 없다. 둘 사이에 아무런 긴장감이 없기 때문이다. 골치 아프게도 사람들은 사랑하는 연인을 갈라놓길 좋아하고, 마지막까지 비극적 결말로 끝내길 좋아한다. 남녀 중 하나는 죽어야 속이 시원하다던 지, 둘 사이가 사실 원수의 자식들이라면 그 스토리는 백년이 지나도, 천년이 지나도 이어질 만큼 사랑을 받는다.
인어공주와 비슷한 스토리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있다. 인어공주와는 남녀가 바뀌었을 뿐 매우 비슷한 흐름을 볼 수 있다. 다만 인어공주가 왕자의 정부까지 된 것에 반해 젊은 청년 베르테르는 그저 짝사랑에 목메다가 자결한 것이 조금 다르다. 이 비극적인 짝사랑 스토리는 베르테르의 처참한 결말로 끝이 나지만 소설은 매우 긴 생명력으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그 이유는 물론 이뤄지지 않은 사랑 때문일 것이다. 혹시 이런 비극을 보고 스스로 위안을 받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했던 혹은 하고 있는 사랑이 영 시원치 않아서 이런 눈물겨운 사랑을 보고 차라리 내 인생이 낫다고 보고 싶은 걸까?
신화를 봐도 이런 스토리는 너무 흔한 이야기다. 우리가 흔히 세제 이름으로 알고 있는 샤프란은 그리스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담은 꽃 이름이다. 그리스에서 연애를 하고 있던 남녀가 있었다. 헌데, 이 여인에게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정해놓은 정혼자가 있었다. 여자는 부모의 뜻을 따라 할 수 없이 이국으로 결혼을 했고, 헤어지게 된 불쌍한 연인은 비둘기를 통해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만약 이 스토리가 둘의 달달한 비둘기 서신으로 끝났으면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여인의 남편이 아내의 불륜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좌절했고, 어떻게 하면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고심했다. 그는 비둘기가 둘의 사랑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비둘기만 죽이면 아내가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 믿었다. 그는 활을 쏘았고, 우연찮게도 활이 아내의 심장을 관통하고 말았다. 아내를 죽인 사실에 괴로워한 남편은 비둘기까지 쏘아 버렸고, 비둘기가 죽은 자리에서 샤프란이 피어났다고 한다.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를 보고 감동을 받지 않는다. 혹자는 완벽해 보이는 커플을 보며 시기를 하고,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남들에게 자신의 행복한 모습을 과시하기도 한다.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사랑은 감동보다 부러움의 대상이 될 뿐이다. 하지만 이들이 이들 사이를 방해하는 커다란 사건을 극복했다거나 사건에 굴복해 더 이상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면 우리는 그들을 보고 안타까워하고 위안을 받기도 하며, 이 이야기를 남들에게 퍼트리기도 한다. 스토리가 생명력을 얻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만약 지금하고 있는 연애가 대대손손 이어지길 원한다면, 둘 사이에 큰 장애물을 세워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인생지사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행복하게 살다 죽는 편이 더 아름다운 스토리일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