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살 좀 보여주실래요?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고, 하늘에서 하얀 눈송이가 펑펑 쏟아지는 겨울이 오면 아무리 난방을 잘 해놔도 여러 겹의 옷을 껴입게 된다. 그동안 감춰왔던 자신의 패션센스를 맘껏 발휘할 수 있으니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냐만은, 사실 겨울은 두꺼운 옷만큼이나 마음이 갑갑해 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이유가 바로 속살을 볼 수 없다는 갑갑함이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막연히 과거, 우리 조상의 조상의 조상 시대에는 지금처럼 개방된 노출을 볼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차도르를 쓴 아랍 여인들처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도포로 뒤집어쓰고 손끝하나, 머리칼 하나 노출을 안 하는 삶을 살았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에도 긴 치맛자락 사이로 누군가의 속살이 비춰 보였고, 적지 않은 노출도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스물하고도 다섯이 넘도록 여자 손 한번 잡아본 적 없는 노총각 머슴이 살고 있었다. 신분이 머슴이라 마음대로 여자를 만날 수도 없었고, 사실 여자를 유혹할 만큼 잘난 구석도 없는데다가 혼례를 올린다고 해도 어차피 노비 인생이 대물림 될 뿐인데 굳이 가정을 꾸려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가 장가를 가고 싶은 이유는 단 한 가지, 지금은 몰래 감칠맛 나게 여자 속살을 보고 만족해야 하지만 장가만 가면 언제든지, 자신이 원할 때마다 마누라의 속살을 볼 수 있다는 점이 그를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그가 평생 여자의 속살을 볼 수 있는 순간은 여름철 냇가에서 멱을 감는 여자들을 훔쳐 볼 때나, 젖을 먹이는 아낙들의 가슴을 훔쳐보는 게 다였고, 그것도 나이가 들면서 노안이 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결국 머슴이 산채로 말라 죽어가는 것이 눈에 뻔히 보였던 주인이 큰맘 먹고 이웃 동네의 친구 집에 들러 여종 하나를 섭외했다. 여종을 새로 들일 자금은 없었지만 혼례를 올려주고 가끔씩 만나게만 해주면 결혼도 하고, 여종을 들일 필요가 없으니 돈도 굳어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다. 머슴은 주인님이 선점해준 처자의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채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동안 개울가에서 훔쳐봤던 수많은 처자들의 속살을 상상하니 참을 수 없을 만큼 몸이 동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혼례 날이 다가왔고, 머슴은 생전 처음 비단옷을 입고 주인 나으리가 열어준 신혼방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혼례식까지는 열지 못했지만 특별히 씨암탉을 삶아 늙은 원기를 보충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방 안에 앉아 있는 각시는 머슴이 생각했던 그런 얌전하고 뽀얀 각시가 아니었다. 햇빛에 그을려 바싹 늙은 얼굴과 검은 머리보다 새치가 더 많은 푸석푸석한 머리칼, 게다가 손은 일을 얼마나 했는지 굳은살로 뒤덮여 고운 구석이 하나 없었다. 머슴은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쉬고 말았다. 그녀 역시 몸 좋고 힘 좋은 머슴을 기대 했지만 그의 꼴은 다 죽어가는 썩은 고목 꼴이었다. 둘은 한숨 깊은 밤을 보내다가 그래도 혼인 첫 날이니 서로의 속살 확인이나 하자며 말을 맞췄다. 헌데 이게 웬일인가, 겉보기엔 거친 사포 같았던 그녀가 옷 속에 감춘 살은 뽀얗고 부드러운게 안방마님 속살 뺨칠 정도로 고운 것이었다.
머슴은 그날 이후로 다시 태어났다. 매사 툴툴거리고 불평불만 많았던 그가 항상 미소를 띈 활기찬 남자가 됐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누라가 보고 싶어 하루 종일 할 일을 낮에 모두 해치우고 밤만 되면 이웃 동네까지 달려가 밤을 보내고 오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의 속살의 힘은 다 죽어가던 머슴까지도 살아나게 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