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곡 중에는 순위를 정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곡들이 많지만 가장 유명한 곡을 꼽으라면 피아노 소나타 [엘리제를 위하여]가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가 세상에 빛을 본 것은 베토벤이 사망한 이후 40여년이 지난 뒤 독일의 뮌헨에서 발견 되었다. 악보에는 대충 휘갈겨 쓴 제목이 붙어 있었고, 지극히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곡이 악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엘리제를 위하여가 세상에 발표된 이후 음악학자들은 역시 베토벤이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고, 그의 수작 중 수작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불 보듯 뻔 한 일이었다. 하지만 베토벤이 왜 하필 엘리제라는 여인을 위해 곡을 썼는지, 엘리제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당시 베토벤의 음악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엘리제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의문의 여인에 대한 호기심과 베토벤의 숨겨진 러브스토리에 집중하며 음악을 감상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엘리제의 정체는 의외로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그녀가 사실 엘리제가 아닌 테페제 폰 말티였고, 베토벤의 지독한 악필 때문에 Therese를 Elise로 잘못 읽었던 것이었다. 테페제는 1810년경 자신보다 무려 23살이 어린 여인을 짝사랑 하다가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 곡을 쓴 것이 바로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이름으로 세상 밖에 나온 곡이었다고 한다.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글씨를 쓰는 사람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펜으로 글을 쓸 일도 별로 없고, 글씨를 못 쓴다고 해서 비웃음을 사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남자의 악필은 어느 정도 남성다움으로 커버 될 때가 있다. 제멋대로 휘갈겨 쓴 글씨에서 남성다움을 찾아 볼 수도 있고, 왠지 모르게 전문적인 느낌도 불씬 베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잘 휘갈긴 악필이 아닌 이제 막 글씨를 배운 초등학생이 노트 가득 연필심을 뭉게며 그린 글씨를 쓰는 남자들이다.
남자의 글씨는 사실 그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 미술을 보면 붓놀림 한 획 한 획에 의미를 부여 하듯 남자의 글씨에도 겉으로는 알 수 없는 그의 내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보는 사람이 더 많긴 하겠지만 글씨 하나에 불타오르던 썸씽에서 한겨울에 얼음물 끼얹은 것처럼 차게 식을 수도 있다.
남자답게 글씨를 쓰는 것은 꼭 각을 살려서 힘 있게 쓰라는 말이 아니다. 악필이라도 약간의 정성만 담는다면 아주 못 봐줄 글씨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과거에는 일부러 자신의 글씨를 악필처럼 쓰는 경우도 있었다. 수첩이나 메모에 자신만이 알아 볼 수 있는 흘림채로 글씨를 써놓고 암호처럼 해독해서 보는 경우도 있었다. 간혹 자신의 글씨를 쓴 사람도 못 읽어서 암호가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글씨 하나에 명작의 제목이 바뀌고, 불타던 애정이 식어 버리고, 공든 탑처럼 어렵게 쌓아 올린 자신의 이미지가 망가질 수 있다. 이런 수고스러움을 덜기 위해선 적어도 남들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만큼이라도 정성을 담아 글씨를 써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