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사랑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의 집단. 미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퍼져 단순히 문화가 아닌 정치, 경제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쳤던 현상이 바로 히피 문화다. 많은 사람들이 히피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약에 취해 늘 음악과 술에만 의지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실제 히피들은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히피들이 자유를 향해 수많은 해방운동을 외쳤지만 그 중에는 여성의 성 해방에 대한 외침도 적지 않았다. 그 시기의 여성들은 남자가 좋고, 성생활이 즐겁더라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지극히 수동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표출하는 답답한 인생의 연속이었다. 그런 억압된 상황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갈구하는 히피들이 등장했으니, 어찌 자극이 되지 않았겠는가.
지금까지 성이라고 하면 늘 숨기고 음지화 됐던 것과 달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표출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된 것이다. 실제로 히피가 성행했던 1960년대의 미국 서부에서는 불황이었던 포르노 산업이 대대적으로 부흥하였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여성들의 성에 대한 인식이 180도 변하면서 포르노에 등장하는 일 자체를 억압된 성을 자유롭게 풀어 놓는 방법 중 하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긴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히피 스타일의 다 뜯어진 옷을 입고 있는 여자에게 포르노 출연을 물어보면 열이면 아홉은 아무 생각 없이 업자들을 따라 갔다고 한다. 이들이 지금의 포르노 배우들과 다른 이유는 돈을 목적으로 한 촬영이 아닌 순전히 자신의 자유로운 영혼을 자유로운 육신으로 결합하여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서였다는 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당시는 실제로 그런 자유로움을 갈망했고, 또 그렇게 자유로워진다고 믿었다.
당시 히피들 중에는 자유는 곧 공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영어로 자유와 공짜 모두 Free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런 오해는 더 쉽게 왔을 수도 있다. 때문에 히피들이 지나간 자리는 물건을 공짜로 가져가거나, 물어보지도 않고 갈취해 버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었다. 음란물을 촬영하거나, 배포해도 영혼이 Free 하기 때문에 저작권이나 초상권도 모두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무한 공유의 오픈 소스를 만끽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히피가 단순히 비어있는 영혼을 무지개 색으로 채우는 아름다운 무언가에서 사회의 문제가 되고, 거리의 부랑아가 된 이유도 바로 이 밑도 끝도 없는 공짜 의식 때문이었다. 자유로운 성(性)이 아닌 공짜 섹스를 탐미하는 집단으로 매도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 자체가 무지개 만큼 아름답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은 남녀 할 것 없이 성생활이 즐겁다고 말 할 수 있다. 여자라고 해서 발언권이 사라지고, 남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도 사라졌다. 그런 의미에서 히피들이 원하던 진정한 성의 해방이 이뤄졌는지도 모르겠다.
여성의 성적 해방과 다양한 마약으로 통한 정신적인 자유의 갈망은 아무리 좋은 쪽으로 해석 해봐도 어폐가 생긴다. 자유가 진정 아름다울 수 있으려면 책임이라는 것이 항상 곁에 붙어 있어야한다. 아무런 책임 없이 자유와 공짜만 부르짖는다면 그에 따르는 무질서를 고스란히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화와 낭만의 상징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은 무분별한 음란물 대량 배포라는 불명예만 얻은 것을 보면 공짜를 쫓으며 자유를 외치는 건 그다지 바람직한 행동은 아닌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