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그 외모 하나만으로도 수 십 가지의 평가를 내린다. ‘저 사람은 키가 작으니까 어린 시절 어렵게 살았을 거야, 저 사람은 좀 통통하니까 게으를지도 몰라.’ 혹은 너무 잘생긴 사람에게서는 ‘저 사람은 너무 잘생겨서 다가가기 어려워, 잘생긴 사람들은 멋진 사람끼리만 어울릴 거야.’ 라고 판단하고 말도 섞기 전에 거리감을 두기도 한다. 물론 사람의 외형이 그 사람의 성격을 대변해 줄 때도 많다. 하지만 늘 얼굴과 인상만 보고 그 사람을 파악하는 일은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남자.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애인이 끊임없이 생기는 남자. 다른 곳도 아니고 길에서 쓰레기 줍는 청소부까지도 조각미남처럼 생겼다는 이탈리아에서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남자는 얼마나 잘생겨야 되는 걸까? 혹시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남자는 무조건 잘생겼을 거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여기 못생긴 남자도 여자들을 줄 서게 할 수 있는 대단한 남자가 있다. 바로 브리엘레 단눈치오(Gabriele D'Annunzio).
가브리엘레의 외형은 매우 평범했다. 우선은 유럽인들의 기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짜리몽땅한 키에, 어릴 때부터 벗겨진 대머리로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얼굴을 가졌고, 특출하게 조각 같은 얼굴이나 호남형의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돈이 많았을까? 그는 못생긴 얼굴에 저주받은 키, 게다가 주머니까지 얄팍한 보잘것없는 저널리스트였다. 그가 활동했던 1880년대 당시 로마는 기자라는 직업을 매우 천박한 일로 여기고 있었고, 돈벌이도 변변치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상류층의 여인들에게 눈길을 끌고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
그의 보잘것없는 외모는 의외로 여성들을 유혹하는데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그가 주로 사교를 벌였던 부유층의 여사님들의 남편들은 이 못생긴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유혹할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몇몇 남자들은 가브리엘레의 외모를 폄하하고 웃음거리로 만들기도 했다. 이런 부담 없는 외모덕분에 그는 누구보다 마음 편히 여자에게 접근할 수 있었고, 수많은 여인들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었다고 한다.
가브리엘레는 전형적인 문학가였다. 돈을 벌기 위해 저널리스트 일을 했지만 그는 위대한 소설가였고, 시인이기도 했다. 깊은 감수성을 지녔던 그는 말 한마디를 내뱉어도 시가 나왔고, 여성을 대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낭만이 베어 나왔다고 한다. 그의 가장 큰 무기는 뭐니뭐니해도 여인들의 귀를 간질이는 목소리였다.
당대 최고의 스타이자 만인의 연인이었던 이사도라 던컨은 그를 두고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가브리엘레의 외모는 우스꽝스러울 만큼 볼품없지만 그와 대화를 한 번이라도 나눠본 사람이라면 단번에 마음이 바뀌게 됩니다. 그의 툭 튀어나온 눈에서는 정열이 비취고,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여인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죠. 그는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여인을 왕비로 만들어 주는 묘약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가브리엘레가 여인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방법은 상대방이 생각지도 못했던 장점을 찾아 감미로운 시어로 여인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식이었다고 한다. 최고의 시인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시로 표현해 주는데 넘어오지 않을 여인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그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정도로 매력이 넘쳤다고 한다.
가브리엘레는 사랑을 위해 열정을 쏟을 줄 아는 멋진 남자였다. 덕분에 별 볼일 없는 집안 출신에 남들이 하대하는 직업을 가졌어도 공작의 딸과 결혼할 수 있었고, 상류층 인사들의 후원을 입어 시인으로써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혹시 자신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학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이야기를 들려줘보는 건 어떨까. 결국 사람이 사람 마음을 파고들 수 있는 방법은 돈과 외모가 아닌 진정성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