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조차 자유롭지 않은 스티븐 호킹에게 세 명의 건장한 자녀가 있다는 사실은 그가 발표한 블랙홀의 증발이론(혹은 호킹복사라고 부른다.)보다 조금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 스물 한 살의 젊은 나이에 루게릭병이 발병해서 최대 5년밖에 살 수 없다는 그와 결혼한 사람은 누구이며, 또 어떻게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게 됐을까. 과연 어느 정도의 사랑이 있어야 그런 일들이 가능할까 호기심이 드는 것이다.
호킹은 다른 루게릭병 환자들에 비해 발병시기가 매우 빠른 편이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학고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의 나이가 고작 21살이었는데, 영국의 명문사학을 그 나이에 졸업했을 정도면 확실히 천재는 천재였던 모양이다. 그가 아직 병명을 밝혀내기 전, 그에게는 제인 와일드라는 이웃집 아가씨가 한 명 있었다. 그의 스물한 번째 생일이 되는 날 그는 마음에 담고 있었던 제인을 자신의 생일 파티에 초대하게 된다.
당시 언어학을 전공하고 있던 제인은 호킹의 긍정적인 생각과 자유로운 영혼에 마음을 끌렸다고 한다. 확실하게 밝혀낼 수는 없지만 호킹은 자신의 입으로 소싯적에 꽤 잘 나가는 청년이었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호킹과 제인에게는 도저히 맞출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 했다. 호킹은 우주의 과학을 밝혀내는 과학자였지만 제인은 철저한 종교인이었다는 점이다. 이 차이는 결국 마지막에 둘의 사이를 갈라놓는 중대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우주만물은 빅뱅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호킹과 하느님의 창조론을 믿고 있던 제인은 언제나 종교적 관점에서 서로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만약 제인에게 이런 종교가 없었다면 둘의 사이가 25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유지되는데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호킹과 이혼한 후 제인이 쓴 비망록에서 남편과 사는 것은 단순한 남녀의 결혼생활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거대한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만약 여기서 종교의 힘이 없었다면 그런 희생을 감수할 힘이 없었을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호킹과 제인이 결혼할 당시는 루게릭병이 발병한 직후였다. 병원의 의사들은 그가 길어야 2, 3년을 살 거라고 진단했고, 호킹의 아버지 프랭크는 그가 죽기 전까지 박사학위를 따게 해 주기 위해 교수들을 만나며 다른 학생들 보다 짧은 시기에 박사 취득을 받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호킹은 의사의 진단을 보기 좋게 뒤엎어 버렸다. 그는 발병 후 지금까지 약 40여년을 살아 왔고, 그 누구보다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호킹이 병을 이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그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이었다. 처음 자신의 병을 발견했을 때, 그는 누구보다 절망하고 좌절을 했다. 아직 할 일도 많고, 꿈도 많았던 21살의 청년에게 시한부 인생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킹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순수하게 병을 인정하고 적어도 뇌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는 사실에 안도를 했다. 몸은 힘들지 몰라도 그가 사랑하는 연구는 계속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이 그의 병은 다른 환자들과 달리 매우 더디게 진행 되었고, 전신마비가 되기 전까지 꽤 오랜 시간 동안 몸과 마음의 준비를 탄탄하게 다져 둘 수 있었다.
아내인 제인 역시 그런 호킹의 심적 변화에 흔들렸을 것이다. 그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꿈을 포기하지 않는 젊은 과학자에게 큰 매력을 느꼈고, 결국 결혼이라는 어려운 결심까지 완성시켜갔다.
호킹은 이제 병을 떠나 큰 책임감을 느끼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그는 아프다고 해서 집에서 쉬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평생 연구와 공부에만 몰두해온 그에게 한 여자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부담감은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이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게 만들어야 했다.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