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영화를 보면 와인을 물마시듯 마시는 장면들이 종종 나온다. 식탁에서 반주로 마시는 경우도 있지만 그냥 맥주 마시듯 가볍게 즐기기도 하고, 대화하면서 조금씩 홀짝거리거나 품위(?)없이 그대로 원샷하는 장면도 나온다. 어떻게 보면 병에 입만 대고 먹지 않는 이상 별다른 매너나 에티켓이 없는 것 같기도 한데, 우리는 왜 와인이 이렇게 어렵기만 한 걸까?

우리에게 술은 작은 잔에 감질 맛나게 따른 뒤 시원하게 잔을 비우고 ‘캬~’소리로 맛을 표현해 주며 다음 잔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우선 와인처럼 시뻘건 술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마시기 어려운 술도 없다. 술이란 즐기기 위한 음식이지 자신의 교양과 품위를 자랑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와인도 우리 술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우리가 와인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 만든 온갖 잡다한 매너들로 와인 한 모금 마시기를 무슨 어려운 시험 문제 치루는 것처럼 배워왔기 때문이다.

와인을 따를 때는 한 손으로 따르며 받는 사람은 잔 받침대에 손끝을 살짝 가져간다. 첫 잔은 한 모금 정도로 조금만 따르고, 받는 사람은 잔 받침대를 손에 들고 향이 와인 잔에 가득 차도록 돌린 뒤 코를 잔 깊숙이까지 넣어 와인의 깊은 향을 맡고, 살짝 입에 머금는다. 와인은 절대 한 번에 삼키지 말고 입 안 골고루 퍼트린 뒤 살짝 넘기듯 마신다.

과연, 이 까다로운 방식대로 와인을 마시면 제대로 된 와인 시음법이 되는 걸까? 이 방식을 와인을 보리차처럼 마시는 프랑스의 어느 가정집에서 해보았다고 쳐보자. 잔뜩 긴장한 얼굴로 와인을 받고 보기 좋게 잔을 흔든 뒤 간을 보듯 와인을 음미하는 순간, 당신을 초대한 프랑스 가정집 아줌마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뭐야, 내 와인이 마음에 안 드는 거야? 참 까다로운 인간일세.’

우리가 그동안 ‘정석’이라 배워왔던 와인 시음 법은 사실 약간 오버된 경향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 나오는 와인들 중 일반인들이 느끼기에 향과 색, 맛이 형편없는 와인 찾기가 보물찾기처럼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걸 간단하게 허세라고 한다.

와인을 멋지게 마실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와인을 즐겁고 맛있게 마시면 되는 것이다. 테스팅 하듯이 폼 잡고 있을게 아니라 가볍게 와인의 향을 느끼고 조금씩 즐기며 마시면 그야말로 멋진 와인 매너가 완성된다. 거기에 가벼운 대화가 함께 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와인 마시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나 어디선가 와인 매너에 대해 집중 교육을 받고 온 사람들은 테이블에 앉아 와인을 받자마자 손에 모터라도 달린 듯이 와인 잔을 돌리기 시작한다. 와인 잔은 처음 받았을 때, 향을 맡을 때만 살짝 돌리면 그 것으로 충분하다. 와인의 향을 발산시키기 위해 와인 잔을 돌리는 ‘스월링’은 너무 잦을 경우 와인의 좋은 향을 모두 날려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와인 잔을 잡을 땐 꼭 잔의 다리만 잡아야 하는 걸까? 한국이나 일본의 역대 지도자들이 유럽의 정상들과 와인 잔을 건배하는 사진을 보면 모두 잔의 긴 부분, 다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 하지만 와인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유럽 각국의 정상들은 죄다 제각각 자신이 잡고 싶은 부분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몸통을 잡든 다리를 잡든, 심지어 와인 바닥을 잡든 크게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손의 온도가 와인의 맛을 다르게 할 수 있다고들 하지만 이것은 와인을 테스팅 할 때 조심해야 할 점일 뿐, 와인을 즐기기 위한 규칙이 되진 않는다.

가장 꼴불견으로 와인을 마시는 사람은 같이 마시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얇은 지식으로 이것저것 지적하며 마시는 와인은 아무리 비싸고 맛있는 와인이라도 제 맛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연애 속 공감대> -LJ비뇨기과- www.lju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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