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라면 누구나 ‘편지’에 대한 아련함이 있게 마련이다. 3년 가까이 가족과 떨어져 국방의 의무를 하던 그 시절, 점호 전에 받은 한 통의 편지는 그 날의 피로를 싹 씻어주는 힘이 있었다. 가슴 절절히 아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따뜻한 글씨체,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줄 모르시던 아버지의 ‘수고 한다’는 딱딱한 말투, 사랑한다는 말과 보고 싶다는 말만 무한 반복되던 연인의 마음을 담은 글. 군대에서 받아보는 편지는, 글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
요즘 라디오 방송을 듣다보면, DJ들이 “반가운 손편지네요.” “오랜만에 손편지가 왔네요.”라고 하는 말들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라디오에 사연을 보낼라치면, 예쁜 엽서를 고르고 좋아하는 신청곡을 적어 그에 알맞게 글씨를 예쁘게 쓰려고 노력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제는 손으로 쓴 편지가 ‘반가운’ 존재가 되었다. 이메일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더 편리하고 빠르기 때문이다. 동네마다 놓여있던 빨간 우체통도 이제는 기억에서 가물가물할 정도이다.
희소성이 생겨서일까. 연인들 사이에 러브레터가 하나의 ‘이벤트’가 된 것 같다. 1분도 안 걸리는 이모티콘을 보내는 대신, 마음에 드는 편지지를 고르고, 부드러운 질감의 펜을 고르고,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가슴 떨리게 고민하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한 글자씩 적어낸 연인의 편지를 받는 것. 여성들만 감동을 받는다고 단정 짓지 말자. 오랜만에 당신의 손에 쥐어진 연인의 편지는 군대시절, 뜨거운 가슴으로 받았던 편지를 떠올리게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휴대폰 문자나 이메일보다 손으로 쓴 편지가 사랑을 상대방에게 전하는 진정한 메신저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 어떤 방법보다 정성이 많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랑하는 구구절절한 마음을 하트 이모티콘만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인들도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연인에게 다양한 러브레터를 보냈다.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에서는 ‘위인들의 연애편지’라는 가상의 책을 만들어 보여주기도 했다. 위인들도 사랑을 하고 연인들을 위해 구구절절한 사랑의 말들을 전했다. 사랑 앞에서는 영웅도, 위인도, 일반인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나는 단 하루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오. 단 하룻밤도 당신을 포옹하지 않고 잠든 적이 없소. 군대의 선두에서 지휘할 때에도, 중대를 사열하고 있을 때에도, 내 사랑 조제핀은 내 가슴 속에 홀로 서서 내 생각을 독차지하고 내 마음을 채우고 있지.’
이것은 1788년 나폴레옹이 아내 조세핀에게 보낸 러브레터의 한 부분이다. 아내를 향한 절절한 마음이 다 드러나 있다. 이보다 더한 표현을 한 사람도 있다. 바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이다. 그는 1904년 사랑했던 노라 바너클에게 이런 러브레터를 보냈다.
‘난 열한 시 삼십 분에 들어왔어. 그러고는 줄곧 바보처럼 안락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거든. 당신의 목소리 밖에는 들리지 않았어. 나는 언제나 당신이 '사랑하는 당신'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있는 바보 같아. 나는 오늘 두 사람에게나 말도 하지 않고 냉정하게 굴어서 그들의 기분을 언짢게 만들었어. 그들의 목소리가 아닌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어.’
또, 프란츠 카프카는 연인에게 러브레터를 받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당신,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토록 나를 괴롭히는 거지? 오늘도 편지가 없군. 첫 번째 들어오는 우편에도, 두 번째 우편에도 말이야. 이토록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다니! 당신은 내가 싫증이 난 걸까? 그 외에 다른 이유를 생각해 낼 수가 없군.’
애끓는 심정을 표현한 이 편지를 받고 펠리스 바워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외에도 우리처럼 사랑을 하고 연애를 했던 유명인들의 러브레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남몰래 마음 아파했으며, 사랑의 밀어를 속삭였다.
이렇게 문서로 남아 있는 러브레터도 있지만 불태워진 것도 있다.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부인 마사 워싱턴은 남편이 죽은 2년 뒤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녀는 눈을 감기 전, 남편에게 받았던 러브레터를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개인적인 내용의 편지가 사람들에게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쩌면 이런 행동이 그의 남편에게 보일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의 답장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글은 잘 쓰는 사람들만 쓰는 것이라고 외면하며 살진 않았는지. 오늘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마음을 담은 장문의 편지를 써 보는 것은 어떨까. 백 송이의 장미꽃보다 소중한 당신의 마음을 받았음에 그녀는 충분히 기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