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다시/껍데기는 가라./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부끄럼 빛내며/맞절할지니'
시인 신동엽의 유명한 시 '껍데기는 가라' 중 일부이다. 여기서 말하는 껍데기는 허위와 가식, 불의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글자 그대로 껍데기, 옷가지를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옷을 모두 벗고 나체가 되는 행위는 외설적인 뉘앙스를 풍기기도 하지만 반대로 인위적인 모든 것을 제거한 순수한 자연의 상태를 목적으로 하기도 한다.
이러한 목적으로 조성된 대표적인 관광지로 누드 비치가 있다.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 자연 그대로의 햇빛과 파도를 즐기자는 순수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의무적으로 옷을 벗어야 하는 곳과 개인의 선택에 맡긴 곳이 있다. 1950년대 프랑스를 시작으로 스페인, 독일 등 유럽은 물론 호주와 하와이, 캐나다에도 하나둘씩 조성되어 갔다.
물론 모든 누드 비치가 그 목적에 맞게 순수하게만 운영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과 전자 기기가 발달된 요즘은 누드 비치 몰래카메라 사진들이 음란 사이트에 무단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중국에서는 누드 비치를 개장했다가 엉큼한 남자들만 몰려드는 바람에 얼마 가지 않아 폐장하는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
역사가 오래된 유럽의 몇몇 유명한 누드 비치들은 비교적 큰 문제없이 운영되고 있다. 누드비치에 처음 가 본 사람들은 다소 낯설고 어색해 하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오히려 옷을 입고 다니는 해변보다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이런 누드 문화(?)에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했다. 바로 '누드 요가'이다. 보통 요가는 최대한 편안하게 몸에 붙는 스판 등의 요가복을 입고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누드 요가는 속옷 한 장 걸치지 않은 완전한 누드로 하는 것이다. 성적이고 외설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신체 상태로 극한의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또한, 함께 수업하는 이들과 더 자연스러운 이해와 소통이 가능하며, 배가 나왔든 흉터가 있든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자신에 대한 사랑과 자존감을 높일 수도 있다고 한다.
뉴욕에서 처음 시작된 누드 요가는 미국 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영국 런던, 호주 등으로 건너가 새로운 요가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남성 전용, 여성 전용은 물론 남녀가 함께 수업을 받을 수 있는 클래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누드 요가에도 반대의 목소리는 따른다. 아무리 취지는 순수하다 해도 순수하지 않은 취지로, 호기심에 등록하는 음흉한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닫힌 공간 안에서 나체의 남녀가 요가 동작을 하다 보면 성적인 분위기가 연출될 수밖에 없고, 파트너와 함께 하는 동작은 신체 접촉이 많은 경우도 있어 자칫 잘못하면 수업의 목적이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가 수업 중에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발기하거나 사정하는 수업 참가자도 있다고 하니 수업의 안전성 또한 우려되는 부분이다. 누드 요가 수업에서는 참가자들의 성적 흥분에 따른 몸의 변화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별 문제 없다는 입장이라고는 하지만 말이다.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자연의 순수성을 되찾자는 의도는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모든 일이 처음의 의도를 그대로 간직한 채 유지되기란 대단히 힘든 일이다. 누드 비치나 누드 요가 모두 참여하는 사람들의 높은 정신적 수준과 절제된 태도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