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편의점에서 콘돔이 가장 많이 팔린다는 날 저녁 7시,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들어온다. 그는 일반형 콘돔과 캔커피 두 개를 사서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점원은 바코드 리더기로 캔커피를 먼저 찍은 후 콘돔의 바코드를 찍기 전에 남학생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퉁명스레 묻는다. "신분증 좀 보여주실래요?"
이 상황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상식은 지식이 아니라 편견이다. 남학생은 당당하게 “왜요? 콘돔은 19세 미만 구입 불가 물품이 아닌데요.” 라 대답하는 것이 맞다.
많은 사람들의 착각과는 달리 콘돔은 성인용품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지하철 자판기에 티슈나 생리대와 함께 콘돔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자판기는 지문이라도 스캔해서 성인 여부를 판단한 뒤에 물건이 나오는 기계였던가? 아니다.
현행법조항 어디서도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콘돔'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규제는 찾아볼 수 없다. 여성가족부의 고시사항에 따르면 청소년도 일반 콘돔을 구매할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있다. 즉, 위의 일화에서 청소년이 콘돔을 산다고 신분증을 요구하거나 판매 거부를 하는 것은 오히려 위법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설문조사 결과 3분의 1이 넘는 성인들이 콘돔이 성인용품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당연히 콘돔은 성관계시 임신과 성병을 예방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건이 맞다. 그런데 청소년은 콘돔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이는 곧 청소년은 성관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논리이다.
물론 성관계는 몸과 마음을 책임질 수 있는 나이라고 법적으로 정해놓은 성인 연령이 되었을 때 하는 것이 좋고, 청소년에게 성관계를 권장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나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과 현실은 천지 차이이다.
2013년 질병관리본부가 조사 발표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 10대 청소년 중 10퍼센트 정도가 성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들의 첫 성경험 연령은 점점 어려져 2013년 현재 12.8세로 나타났다. 이는 평균 초등학교 5~6학년의 나이이다. 성경험 연령이 일러지면서 성 관련 질환을 앓게 되는 학생의 비율도 높아지고. 임신율은 무려 4분의 1에 가깝다. 그리고 이러한 청소년 임신은 소중한 생명의 낙태, 또는 유기로 이어진다.
막연히 '애들은 어려서 안 돼'라는 생각으로 막거나 반대만 하기에는 현실의 수치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성교육은 아직도 정자 난자가 만나야 아이가 생긴다는 생물학적 지식에 머무르고, 올바른 피임법, 콘돔 사용법 등 정말 실질적인 성교육을 해주는 학교는 손에 꼽을 만큼이다.
아무리 안 된다고 하더라도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까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청소년의 건전한 이성교제 권장' 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막 성에 눈뜨기 시작한 10대들이 어른이 바라는 '건전한' 교제만을 해주길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더구나 '건전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스킨십 없이? 키스까지만 허용? 건전함이란 성인들이 나서서 정해줄 수 있는 기준인가?
다행히 최근 몇몇 벤처 기업들이나 사회단체들이 움직이며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그들은 청소년의 무분별한 임신과 성병 예방을 위해 피임법과 올바른 콘돔 사용법을 가르치고, 청소년에게도 콘돔을 구매할 권리가 있음을 일깨우는 캠페인들을 벌이고 있다. 어리고 책임감이 없다는 이유로 청소년의 성생활을 막연히 봉쇄하기만 할 것인가,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도록 ‘가르칠’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