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많은 돈을 소비해야 하는 부분은 뭐니 뭐니 해도 머리카락이다. 자르고, 볶고, 피고, 심지어 붙이는 일까지. 우리의 머리카락은 쉴 새 없이 스타일을 만들고, 또 그만큼 돈을 들인다. 만약 우리에게 털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온갖 종류의 모자들이 나와 스타일을 대신할 수도 있고, 몸의 보호를 위해 특수한 옷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몸에 난 털을 두고 어떤 사람이 우성이고 열성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털이 많은 사람과 털이 적은 사람, 이들 중 누가 유전적으로 우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사람들 몸에 나있는 털을 두고 유전학적으로 열성과 우성을 나누는 일이 있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 혹은 인종과 인종 사이의 전쟁에서는 누가 더 전투력이 높은가, 누가 더 막강한 무기를 가졌는가의 문제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들 사이에 일어나는 묘한 민족 우월성 대결도 매우 치열했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우월성 경쟁이 바로 2차 세계대전, 유럽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서양인들에게 대적할만한 인종이 거의 없었다. 백인들은 늘 기고만장해서 자신과 조금 다른 사람들을 철저하게 차별하거나 학대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동양인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서양과 동양은 외형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엄청난 차이를 갖고 있다. 이 차이점일 일일이 나열하자면 아마 끝도 없을 것이다. 얼굴 생김새부터 머리카락, 키, 체형도 모두 다르다.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도 동서양은 큰 차이를 띈다. 차라리 둘의 같은 점을 찾는 편이 더 빠를 정도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동서양의 기싸움은 이런 생김새의 차이에서도 일어났다. 서양 사람들은 자신들이 키가 더 크고, 피부가 하얗기 때문에 더 우월한 유전자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동양 사람들은 우리가 키는 좀 작을지 모르지만 짐승처럼 온 몸에 털이 나지 않고, 또 머리의 크기가 서양인들에 비해 더 크기 때문에 훨씬 우월한 유전자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기싸움이 정점에 다다른 곳이 바로 인간의 털이었다. 일본은 인간이 영장류에 속하며 영장류에서 인간으로 진화하기까지의 단계를 살펴 볼 때 점차적으로 털이 적어졌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털이 적으므로 유전학적으로 한 단계 더 진화한 우월한 인종이라는 것이었다. 덮어놓고 보면 꽤나 그럴듯한 말이다.
물론 서양에서는 이런 관점을 쉽게 인정 했을 리 없었다. 서양인들이 분명 털이 많긴 하지만 이것은 영장류에게 가깝기 때문이 아닌 환경적으로 외부의 추위, 충격에서 보호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남은 것이라 설명했다. 즉 쓸데없이 깡그리 털이 사라진 동양인들이야 말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잘못된 유전자를 가졌다는 것이다. 환경에 적응 할 수 있도록 몸이 변화하는 서양인이야말로 동양인에 비해 우월한 종이라며 동양인들을 더욱 깔보기 시작했다. 물론 이 두 물음에 완벽한 정답은 없었다.
머리카락이 까맣고 몸에 털이 적은 동양인, 피부가 하얗고 몸이 털북숭이인 백인, 까만 피부에 백인보다 더 털이 많은 흑인. 인류의 가장 대표적인 세 가지 인종들을 살펴 볼 때 누가 무엇 때문에 우성이고 열성인지 정하는 일만큼 멍청한 일도 없어 보인다.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한 이유가 노력여하에 상관없이 그저 태어난 나라의 유전자가 동양이고 백인이기 때문이라면 이 세상은 피부색으로 계급을 나누는 웃지 못 할 상황이 연출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지나친 민족주의의 폐해를 배웠다. 만약 이런 역사를 통해서도 배운 게 없다면 그거야 말로 진정한 열성 유전자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