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인생에서 결혼은 탄생 이후 가장 중대한 사건이자,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뿌리째 흔들어 버릴 수 있는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누군가의 아들, 딸로 살아오다가 결혼을 하고, 생판 다른 삶을 살았던 타인과 가족이라는 작은 소속을 만들고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결혼은 혼자 살 때 느끼지 못했던 묵직한 책임감을 어깨 한쪽에 올려 놓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의 경우 결혼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평생 함께 하자고 약속을 하는 절차이다. 결혼이라는 부담스러운 타이틀을 피하기 위해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평생 동거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혼 관계라 해도 법적으로 혼인 커플만큼 다양한 보장을 해주기 때문에 아무 불편 없이 부담 없는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반에 한국에서의 결혼생활은 사랑을 전제로 하기는 하지만 배경에는 늘 가족과 가족의 만남이라는 엄청난 압박을 견뎌내야 완성 될 수 있다. 연례행사 때마다 서로의 가족들을 찾아가야 하고, 크고 작은 일에 가장 먼저 나서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해야 하기도 한다.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일을 우리는 왜 그렇게 안달복달하며 하려고 하는 것일까?
여자의 나이가 이십대 후반에서 앞자리가 3으로 바뀔 때쯤이면 열병처럼 앓고 가는 병이 하나 있다. 바로 결혼 병이다. 왠지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 때면 누군가와 함께 웨딩 촬영을 찍어야 할 것만 같고, 평소 귀찮기만 했던 아이들이 갑자기 미치도록 귀여워 보이고, 괜히 신혼여행지로 하와이가 좋을지, 몰디브가 좋을지 고민해보기도 한다. 대부분의 미혼 여성이라면 한 번쯤 걸려봤을 법한 병이 바로 이 결혼병이다.
이 시기에 좋은 짝을 만나서 백년가약을 맺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시한폭탄을 들고 단거리 달리기를 하는 사람처럼 조급하게 뛰다보면 옆에 있는 사람이 사람인지 똥차인지 분간도 못하고 무작정 결승점을 보며 뛰는 경우가 생긴다.
비단 여자에게만 나타나는 증상은 아니다. 남자 역시 결혼병이 돌림병처럼 유행하는 시기가 온다.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씩 결혼을 하고, 부모님이 은근히 압박을 가해오고, 왠지 이 시기를 놓치면 노총각 딱지가 얼굴 한 가운데 딱 하고 붙을 것만 같은 시기가 바로 이 시기다. 물론 남자는 늦게 결혼해도 나쁘지 않다는 말이 돌기도 한다. 하지만 남들 다 갈때 나만 안가면 전혀 그렇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어딘가 부족해 보이거나, 남들에게 없는 단점이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을 하게 된다.
치열하게 경쟁만 하며 살아오던 대한민국의 건실한 청춘 남녀가 결혼까지도 경쟁처럼 하는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사태이다. 요즘은 결혼도 스펙의 한 종류라고 하고, 결혼을 능력의 증거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정도 환경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결혼 상대를 두고 경쟁하듯 조건을 찾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결과를 만든다.
결혼 병에는 약이 없다. 시간이 지나고, 만성이 생겨야만 치유가 되는 감기 같은 병이다. 게다가 감염도 심해 옆에 누군가가 결혼 병으로 앓고 있으면 병이 옮아 자신도 모르게 결혼을 외치고 있는 경우도 생긴다. 만약 증상이 너무 심각하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에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보자. 집에서 가만히 공상만 하고 있다고 해서 결혼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