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에서 떠오르는 직업 중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 즉 Relationship을 진단해 주는 전문가가 등장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부부 상담치료, 연애상담치료사는 있었지만 인간관계를 모두 진단하는 전문가는 흔치 않았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거나 방 안에 박혀있는 은둔형 외톨이가 아닌 이상 사람에게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강력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이 드는 순간까지 누군가와 끊임없는 관계를 만든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관계를 잘 맺는 방법이나 관계를 끊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한 전문가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관계가 비슷비슷한 형태를 띤다고 설명한다. 즉 둘 사이가 연인이던, 부모와 자식이던, 직장상사와 부하 직원이던 모두 비슷한 방법으로 서로를 탐색하고, 알아가고, 속이고, 미워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A라는 남자는 연애를 3개월 단위로 끊어서 하는 사람이었다. A의 문제는 여자를 첫눈에 반하게 할 만큼 엄청난 매력을 가졌지만 정확히 90일이 지나면 매력의 효과가 모두 소진되어 여자들이 스스로 떠난다는 점이었다. 깊은 관계를 원치 않았던 그는 단기연애를 매우 즐거워했고, 주위사람에게 떠벌릴 만큼 자신의 연애신공을 자랑스러워했다.

만약 A가 2, 30대의 불같은 청춘만 살고 죽을 거라면 평생 행복에 겨워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A 역시 남들이 먹는 만큼 나이를 먹었고, 떠돌이 생활을 청산할 시기가 찾아왔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장기 연애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A는 큰 난관에 부딪쳤다. 그토록 사랑한다고 주문을 걸던 여자들이 또다시 3개월을 못 채우고 떠나갔기 때문이다.
A가 애인 리스트로 A4용지를 꽉 채울 때, 한 여자만 주구장창 사귀던 B라는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의 연애 경력은 고등학교 시절 사귀었던 여자 친구 한 명 뿐이었는데, 놀랍게도 철없던 시절 시작했던 인연이 무려 10여 년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한창 뜨거울 나이 20대를 통째로 공유했던 이 커플은 서로에게 너무나 익숙해서 인생이라는 좌표에 서로를 떼어놓고는 도저히 완성이 안 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렇다면 A와 B중 누가 먼저 결혼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B를 예상하지만 놀랍게도 A가 훨씬 먼저 결혼에 골인했다고 한다. 관계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짧게 치고 빠지는 관계에 익숙한 A의 경우 한 번 결정한 일을 추진하는 속도 역시 빨랐다고 말한다. 굳이 결혼의 전제조건에 깊은 관계가 필요치는 않다는 것이다. 물론 A의 경우 남들과 오래 사귀는 방법을 익혀야 하긴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가 반강제로 그를 묶어 두었고, 참을성과 인내력까지 끼워 팔았다고 하니 그의 인간관계 개선에 큰 도움이 된 것은 두말 할 여지도 없다.

그렇다면 B는 어떨까? B의 경우 너무 오랫동안 한 사람에게 익숙해져왔다. A의 경우 짧긴 해도 여러 사람과 부딪치며 관계를 진화시킨 데에 반해 B는 평생 한 사람만 주구장창 만나는 편식을 해왔던 것이다. 결국 다른 사람을 만나려 해도 어떻게 만나는지, 처음엔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고, 익숙한 연인과 결혼을 하자니 조급한 마음이 생기지 않아 계속 미뤄지게 됐다고 한다.

혹시 평생 짝이 될 완벽한 인연을 기다리고 있다면 조금 생각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긴 연애도 물론 즐겁고 행복한 일이지만 그런 긴 만남은 결혼 후에 부부사이가 되어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감정이다. 완벽한 인연, 완벽한 짝을 찾는 것보다 지금 당신의 삶을 행복하고 즐겁게 만들어 줄 많은 관계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연애란 어차피 사람을 사귀고 상대방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런 관계에 익숙한 사람은 연애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달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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