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참 많지만 안타깝게도 하기 싫어도 꼭 하게 되는 일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여자와의 싸움이다. 에이, 남자가 여자랑 싸울 일이 뭐 있겠어?

넓은 아량으로 다 감싸줘야지.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살 맞대고 평생 함께 할 여자와 매일같이 희희낙락할 거란 희망은 애초에 접어두는 것이 상책이다.

남자와 여자는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어 있다. 만약 평생 여자와 싸우지 않는 남자가 있다면 그건 다 늙도록 여자 손 한번 못 잡아 본 노총각이거나 게이일 것이다.

여자와의 싸움에서 남자는 늘 불리하다. 힘으로 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말로 싸우기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Let's fight! 하고 링에 올라가서 정정당당하게 한 판 뜨고 싶지만 그렇게 했다간 미개인 취급당할게 뻔하다.

여자와의 싸움에서 어떻게 하면이길 수 있을까? 남자의 뭉개진 자존심을 단 번에 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정답을 미리 말하자면, 지는 것이 바로 이기는 것이다. 남자와 남자의 싸움은 미래를 자신에게 더 유리하게 바꾸기 위한 싸움이다.

반면 여자의 싸움은 과거와 현재를 정리하기 위한 싸움이다. 그동안에 힘들었던 일들, 쌓아 두고 있었던 일들이 폭발 하면서 정리를 하고자 할 때 여자는 싸움을 시작한다.

반면 남자들은 미래에 자신이 불합리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생각 될 때나 술을 머리끝까지 마셔서 정신이 해롱거릴 때 싸움을 건다.

남녀 간의 생각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싸움에서 굳이 승패를 따질 이유가 없다. 어차피 누가 이긴다고 상황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넓은 아량으로 여자를 품어줄 때만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지긋지긋한 싸움을 빨리 끝낼 수 있을까? 누군가는 아내가 화나고 삐졌을 때 종이와 펜, 도장과 인주만 있으면 단숨에 싸움을 끝낼 수 있다고 한다. 각서를 쓰고 도장을 찍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 마디면 끝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남자만의 해결 방식이다. 여자는 절대로 이런 단순한 방법으로 화를 풀지 않는다.

“여자와 싸우면 늘 짜증이 나요. 십년 전 일까지 끄집어내서 잘못을 다시 되새김질 한다니까요. 잘못했다고 빌면 좀 끝내줄 수만도 하잖아요. 꼭 뭘 잘못했는지 하나하나 다 캐물어 들고,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또 그것 때문에 화를 내죠. 차라리 평생 마누라 없이 혼자 늙는 게 좋을 정도예요.”

남자의 심정은 이렇다. 반면 여자의 마음은 어떨까?

“남편하곤 답답해서 싸움이 안돼요. 늘 제가 포기하는 수밖에 없죠. 다시는 바람피우지 않겠다, 아이들과 더 자주 놀아주겠다, 약속은 참 잘해요. 하지만 그 때 뿐이에요. 각서는 종이 낭비하려고 쓰는 거 같아요. 모아두면 책으로 한권일 걸요. 왜 덮어놓고 상황을 피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여자는 싸움에서 자신의 의견을 끝없이 나열하려고 한다. 싸움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당장의 원인보다 그동안 쌓아 두었던 것을 푸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과거 얘기도 나오고, 신혼 때 서운했던 얘기도 나오고, 연애 때 얘기도 나오기 마련이다.

이 때 남자는 단번에 싸움을 정리하려고 해선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다음 싸울 때 또 오늘 일이 화자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땐, 그녀의 눈을 쳐다보고 이야기를 들어 주도록 하자. 정말 듣기 힘든 말이라면 속으로 애국가를 불러도 좋다.

여자는 대화와 수다로 화를 풀어 버린다. 만약 남자가 그 대화의 상대가 되어 준다면 그 분노는 더욱 빨리 사그라질 것이다. 서로 칼날을 세우며 상처를 입히려 하지 말고 칼로 물 베듯 그녀를 감싸준다면 지옥 같은 싸움에서 몇 분이라도 더 일찍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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