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면 오는 것이 사랑
살아가면서도 누군가와 자신의 감정을 공유하기란 쉽지 않다. 예컨대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모두 다 드러내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인간에겐 두 가지 두려움이 있다고 하는데 그 두려움의 하나는 미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죽는 것이다.
먼저 두려움에 대해 말해보기로 하자. 인간은 누구나 낮선 것에 대한 두려움과 헤어짐에 따른 두려움이 있다. 낮선 것에 대한 두려움은 생소한 그 무엇에 대해 자신의 감정을 숨기게 되고 때론 낮선 상대에 대해 경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낮선 것은 신비로움, 동경심, 색다른 자극과 기대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 두려움이 오히려 자극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자극 때문에 외도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위험한 정사가 주는 묘한 스릴도 낮선 자극에 속하는 것이 된다. 결국 미친 욕망, 정상적이지 못 한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을 만큼 욕망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헤어지는 것, 이별에 대한 두려움은 여자와 남자에도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는데 헤어지는 것. 혹은 혼자 남겨지는 고독감이 두려워 의무적인 섹스를 하고 안부를 묻고, 의무적인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의무적인 관계는 더욱 더 큰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다.
상대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별 후에 다시 누군가와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도 역시 두려움이 남겨지게 된다. 그러나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내가 아픈 것이 두렵지 상대의 아픔에 대해서는 겉으론 걱정을 하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내 아픔에 대한 걱정이 먼저 앞서는 것이다.
유행가 가사 중 ‘너의 행복을 위해, 내가 못난 사람이기 때문에 이별을 선택했다.’는 가사는 절대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별하는 마당에 상대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고 상대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내가 스스로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이별에 대한 두려움을 그럴듯하게 꾸미고 장식하여 스스로의 마음을 좀 더 편하게 만들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이 부분은 주로 남자가 여자와 이별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대사이다.
반면 여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여자는 상대가 조금이라도 이별의 기미를 보이게 되면 ‘이제부턴 어디에서 뭐하는지, 왜 전화를 하지 않는지, 잔소리 하지 않을 테니 제발 날 떠나지 마.’라는 노래 가사가 나온다. 정말 절절하게 남자가 자신을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더욱이 헤어진 후에도 ‘밥은 잘 챙겨 먹는지, 술은 많이 마시지 않는지, 아픈 곳을 없는지’ 걱정하는 노래 가사는 정말 이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반대로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나와 이별을 했으니 밥도 못 먹고, 술만 많이 먹고, 잠도 못자야 해. 그래야 내가 조금 덜 억울할 테니.’ 와 다를 것이 없다.
상대와 헤어지는 것이 두렵다면 먼저 버려야 한다. 울고불고 매달리면 달아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이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릴 수 있을 때. 사랑은 다시 찾아오게 된다.
잊지 말자. ‘버리면 온다.’ 물론 버려서 오지 않는 다면 운명에 맡겨보자.
내가 버렸으니 마음은 덜 억울할 것이다. 사랑은 줄다리기라고 했던가. 줄다리기에서 내가 당기면 오히려 더 멀리 달아나려는 습성이 사랑 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연애 속 공감대> -LJ비뇨기과- www.lju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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