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를 버리고 태권도 사범과 결혼한 여자
수백만 명의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수 천명의 여자들을 만나왔지만 오직 한 사람만을 가슴에 품은 남자! 감미로운 목소리로 부드럽게 사랑해 달라며 애원하는 록큰롤의 황제이자 전설인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1977년, 갑작스러운 사고로 엘비스 프레슬리가 사망한 이후 전 세계의 록큰롤 역사는 새로 쓰이게 되었다. 그는 사후 지금까지도 매년 4천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그가 사실은 생존해 있으며, 외계인에게 납치 되었다는 루머를 지금까지 믿고 있는 팬들이 있을 정도로 음악의 역사이자 전설이 되어 버렸다.
1950년대에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독창적인 무대매너와 훌륭한 가창력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엘비스는 항상 여자가 끊이는 날이 없을 만큼 스캔들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이 엘비스의 여자 친구라고 나설 수가 없었다. 그가 한 명의 여자를 지속적으로 만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만난 여자가 족히 천여 명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보통 평범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당연히 허풍이라며 웃고 넘길 테지만 엘비스만큼은 1000명이 겸손해 보일 정도로 굉장한 여성 편력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런 엘비스에게도 단 한명의 잊지 못할 여인이 있었다. 엘비스는 1958년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사망으로 큰 충격을 받게 되고, 그 즉시 가수 생활을 청산하고 미군에 입대하게 된다. 늘 수천 수만명의 팬들에 둘러싸여 노래를 부르던 그가 평범한 미군이 되어 독일에 주둔하게 된 것이다. 엘비스는 독일에서 근무하던 중 어느 한 여성에게 홀딱 반해 버리고 만다. 그녀의 이름은 프리실라 뷰리우. 독일에 주둔하던 미군 대령의 딸로 지금까지 만났던 여자들과는 달리 엘비스를 보고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매정한 여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플리실라는 처음부터 엘비스를 몰랐다고 한다. 늘 아버지와 함께 해외 주둔지를 이동해 가며 살아온 그녀가 미국을 접수한 세기의 가수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그녀의 도도함에 엘비스는 생에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생일 날 프리실라를 초대 해 진지한 만남을 갖게 되었고, 그녀에게 자신의 가장 히트곡인 Love me tender를 불러주게 되었다. 수많은 여자들이 엘비스의 노래에 매료되었듯 그녀를 향해 진심을 잔뜩 담아 부르는 달콤한 노래에 플리실라 역시 맥없이 넘어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해도 엘비스의 주위를 따르는 수많은 여인들을 물리칠 수는 없었다. 프리실라는 엘비스와 평범한 연인들이 하는 평범한 데이트를 원했지만 항상 여자들에게 둘러싸이는 엘비스로 인해 마음고생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이런 마음고생을 정리해 주기 위해 엘비스는 프리실라와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결혼을 축하해 주는 사람보다 시기와 질타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결혼 이후에도 엘비스는 가정에 충실할 수가 없었다. 공연을 위해 집을 항상 비울 수밖에 없었고, 여자들의 유혹에 속수무책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타블로이드 지는 이런 엘비스의 사생활을 집요하게 파헤쳤고, 결혼 이후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결혼 후 외로움에 시달리던 프리실라는 집 주변에 있던 태권도 도장을 다니게 되었는데, 여기서 태권도 사범인 마이크 스턴엑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엘비스와의 5년간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그녀는 이혼 이후 곧바로 태권도 사범과 결혼을 하게 되고, 엘비스는 이 충격으로 마약에 빠지게 된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이 때 시작한 약물을 끊지 못하고 중독으로 빠지면서 1977년 8월 16일 과다한 약물복용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마무리를 짓게되었다. 아무리 세기의 가수라도 부드럽게 사랑을 갈구하던 평범한 남자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