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두 집 살림하던 여자
요즘 드라마를 보면 어쩜 저런 일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막장 가족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드라마가 끝나고 채널을 돌려도 조금 다른 형태의 막장이 나올 뿐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과연 이 막장 스토리는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으며, 그 원조는 또 어디일까?
사실 드라마 보다 더 막장스러운 곳이 바로 현실이다. 형제가 한 여자를 사랑하고, 그 여자는 형제의 아버지를 사랑하는 내용이라던가, 돈을 위해 가족도 버리는 스토리는 TV드라마 보다 뉴스 시간에 더 자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말도 안되는 러브 스토리가 최근 들어 갑자기 등장한 것일까? 의외로 우리의 조상님께서도 이런 복잡다단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한다.
조선시대 영남지방에서 평생을 과거 시험 준비만 하던 선비가 있었다. 그가 부모님께 물려받은 거라곤 상투 틀고 갓을 쓸 수 있는 선비의 신분 뿐, 입에 풀칠하고 살만한 어떠한 생계 수단도 물려받지 못했다. 그런 그도 중매가 들어오고 장가를 가게 되었다. 신부가 된 여인 역시 찢어지게 가난한 선비집의 막내딸로 마른바가지에 쌀 한 톨 못 얹어 시집온 박복한 여인이었다.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 하루 종일 글 읽는 남편과 주린 배를 움켜쥐고 겨우 풀뿌리만 캘 줄 아는 아내가 오직 과거 시험 날만 기다리며 겨우 연명을 하던 중이었다.
드디어 시험 일정이 발표 되고, 남편은 한양까지 가는 먼 길을 나서기 위해 있는 식량 없는 식량 다 긁어모아 한 봇짐 챙겨 들었다. 아내에게 시험에 합격하면 당장 쌀부터 보내겠다며 약속도 굳게 해주었다.
하지만 글을 팔 줄은 알아도 사람 뱃속까지는 팔 줄 몰랐던 남편은 훗날 지고 올 쌀 한가마니보다 지금 당장 배를 채울 쌀 한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남편이 가고 홀로 남은 아내는 배를 굶다 못해 사경을 헤맬 지경이 되었고, 죽기 전 마지막 힘을 다해 집이 있는 산 속을 빠져나와 인가가 있는 곳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쓰러진 여인을 구한 것은 양반집에서 평생 잡일만 하며 살던 머슴이었다. 그는 주인이 혼례를 올려주지 않는 이상 상투를 틀 수 없는 신세로, 지금까지 총각 딱지 한번 떼지 못한 채 우울하게 늙어가던 남자였다. 아무리 신분이 높은 양반집 아낙이라도 못 먹고 못 입은 채로 산에서 기어 내려왔으니 그녀의 겉모습만 보고 노비인지 양반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머리도 산발이 되어 뎅기가 그대로 내려와 있어 아녀자인지 처녀인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머슴은 기절한 그녀를 집으로 데려와 누룽지를 잔뜩 끓여 먹이고 정신을 차리도록 도와주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눈을 뜨니 눈앞에 보이는 남자가 그렇게 능력 있고 자상해 보일 수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기약도 없는 남편을 뒤로 하고 머슴과 살을 맞추는 사이가 되었고, 밥과 따듯한 방이 있는 곳에서 두 번째 신혼을 시작했다.
한양으로 시험을 치러 갔던 남편 소식은 몇 년이 지나도록 뜬소문만 들릴 뿐 정확한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누구는 한양까지 가던 길에 아사를 해서 죽었다고 떠들어 댔고, 또 누구는 중간에 호랑이가 물어갔다고 엄한 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소문만 무성하던 몇 해가 지나고 작은 벼슬 하나를 쥔 남편이 사람을 시켜 아내를 찾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결국 그녀는 한양으로 올라가면 선비의 아내가 되고, 고향으로 내려가면 노비의 아내가 되었으며, 한양으로 가던 도중 만났던 상인과 세 번째 혼례를 올려 충청도쯤 지날 땐 상인의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막장 드라마가 유행하는 세상이라지만 인생마저도 드라마처럼 막장이 되어선 안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