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사이에서 조금 친해졌을 때, 혹은 초보 연애관계에서 조금 더 진도가 나갔을 때, 우리는 ‘방귀를 텄다’라고 말한다. 만날 때마다 긴장한 상태에서 방귀 조짐이 있으면 그대로 괄약근을 조여 방귀를 참거나 방귀를 뀌기 위해 화장실을 찾는 촌극을 벌였지만 둘 사이가 친해지고 편해지면 조심스럽게 냄새 없는 방귀를 흘려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남자들의 경우 용기 있게 방귀를 털어낼 수 있지만 여자들의 경우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남녀 차별이 여기에서도 오는 것일까? 남자가 시원하게 방귀를 뀌면 뱃심이 좋네, 참 시원하게도 뀌는구나 하며 웃고 넘기지만 여자가 방귀를 뀌면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서로 눈치를 보거나 여자의 얼굴이 여름철 햇볕을 가득 머금은 붉은 사과처럼 빨개지고 남자는 짐짓 모른 척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민망한 방귀는 어떤 방귀일까? 남자친구의 부모님과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서 일순간 긴장이 풀리며 뀌는 방귀는 차라리 정신을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혹은 목욕탕에서 때를 밀 때, 목욕 관리사 앞에서 뀐 방귀도 매우 부끄럽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남녀가 관계 중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저 마찰과 힘의 원리로 인해 생긴 방귀만큼 민망한 경우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남녀가 방귀를 텄다고 말할 땐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단 둘이 있는 공간에서 뀐 방귀니 남이 뀐 것처럼 연기를 할 수도 없고, 가장 가까운 상태에서 뀌었으니 표정을 숨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이 방귀 때문에 고생을 하던 여인이 한 명 있었다. 이 여인은 특히 남편과 정감을 나눌 때만 힘이 풀려 푸쉬식하는 힘없는 방귀가 새어 나왔는데, 아무리 힘을 주고 정신을 차려 봐도 방귀 소리만큼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니 집중하지 못하고 방귀에만 신경을 쓰는 바람에 남편과 아내 모두 만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편은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며 아내를 달래보았지만 그 수치심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결국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가 자신의 증세를 밝히고 어떻게 하면 남편과 관계를 할 때 방귀를 뀌지 않을 수 있을지 물어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사람 몸에서 방귀가 나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이것을 막는 것은 몸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 몸을 고치는 의원이 아무리 뛰어난 의원이라도 몸에서 배출되는 방귀를 막을 도리는 없었다. 의원은 생각보다 많은 여인들이 남편 옆에서 방귀를 뀌며, 아무런 이상도 아니라고 말해주었지만 여인에겐 속 시원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결국 의원은 여인을 몰래 불러내 이렇게 말하였다.
“방귀가 나오려할 때마다 목소리를 크게 내서 방귀 소리를 묻어 버리시오, 감흥이 돋는 목소리로 소리 높여 지른다면 남편 역시 기분이 좋아 아무것도 모른 채 넘어갈 것이오.”
그야말로 명의다운 발상이었다. 아내는 집으로 돌아가 의원이 시키는 대로 목소리를 높여 방귀 소리를 묻어 버렸다. 남편은 아내의 목소리에 더욱 신이 나서 아내를 더 자주, 강하게 안아주었다. 이 비법의 단점이 있다면 목소리가 너무 커 담장 밖을 넘었다는 것과, 부부가 관계를 갖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알아 버렸다는 정도다. 하지만 이에 연연하지 않고 부부는 더욱 깊은 사랑을 느꼈고, 평생 잉꼬부부로 목소리 높여 사랑을 외쳤다고 한다.
방귀는 모든 동물들이 뀌는 매우 자연스러운 생리 활동이다. 만약 이야기에 나온 여인처럼 방귀로 고민이 많다면 생활 습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식생활 개선과 운동, 규칙적인 화장실 사용이 습관화 된다면 잦은방귀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방귀로 어색한 사이가 트이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독가스로 상대방을 괴롭게 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