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성기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흔히 있는데 일부에서는 여성에게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생명의 잉태권을 남성 심볼이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남성 우월주의 사상을 일부에서 주장하기도 한다.
남성 성기는 강력한 쾌락적 추구를 통한 유희를 가능케 한다는 의미에서 역사적으로도 항상 흥미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성기의 크기를 풍자했던 변강쇠 가 있었듯이 크기에 특히 민감한 것은 남성들끼리의 우월성의 과시와 남성의 성기능과 힘의 연관성을 크기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남성이나 여성에게 시각적인 면을 통한 기대심리를 가지게 하기도 한다.
처녀인 여성은 상대 남성의 몸에 많은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만일 상대방이 적당한 크기를 소유했다면 안심 을 하게 되고 너무나 비정상적으로 크면 부담이 되고 만일 생각보다 작다면 실망을 할 수도 있다. 상대의 몸이 아주 작은 경우 외면적으로는 표현을 하지 않게 되는데 여성들은 대부분 남성의 크기와 사랑의 연관성에 큰 의미를 부여 하지 않는 것으로 행동하게 된다.
작은 남성에 대해 불만스러운 인상을 풍기는 것은 여성자신의 크기가 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어서 절대적으로 사랑과 관계의 무관함을 주장하는데 이런 여성은 솔직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에게 성적결함이 있거나 신체적 자신감이 없는 여성의 경우가 많다. 여성의 솔직함에 대한 일화를 소개해 보기로 하자.
금강산일대의 사람들은 예로부터 땅벌을 땡삐라고 부르고 있었다. 금강산일대의 땡비는 다른 지역의 땡삐보다 금강산의 정기를 타고 태어나서 그런지 아님 각종 약초와 산삼 꽃의 꿀을 먹어 서인지 엄청나게 사납고 독도 세다고 한다.
어느 농부가 고개를 넘어가다가 소변을 보았는데 공교롭게도 땡비의 둥지에 소변을 보았다. 뜻밖에 오줌 세례를 받은 땡벌들이 갑자기 날아와 농부의 몸을 사정없이 쏘아대었다. 농부는 펄쩍펄쩍 뛰면서 도망을 쳤지만 벌에 쏘인 곳이 퉁퉁 부어 집까지 다리를 벌리며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다. 농부가 겨우 집에 도착해 아내에게 소금물로 상처가 난 곳을 씻어 달라고 했다.
아내는 소금물 로 남편의 상처를 씻어주면서 보니 평소에 작아서 불만이었던 남편이 엄청나게 크게 부어서 듬직하고 대장부 처럼 보이는게 아닌가. 아내는 좋아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 남편이 볼일을 보러 다시 집밖을 나가자 아내는 정화수를 떠 놓고 빌기 시작했다. ‘땡 비님, 우리 남편을 한번만 더 쏘아 주세요.’ 아직도 금강산 일대의 사람들은 함부로 아무 곳에서 소변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