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전국 어디를 가도 일일 코스가 가능 할 정도로 교통수단이 빨라지고 다양해졌다. 고속도로를 달리면 평소 보던 풍경과 전혀 다른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고, 기차를 타고 한두 시간만 달려도 드넓은 바닷가가 펼쳐진다. 여행을 간다고 며칠 전부터 짐을 싸고, 일정을 짜던 예전과 달리 이제 마음만 먹으면 당일 코스로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러니 데이트 코스를 짜야하는 입장에서는 머리가 더 아파지는 결과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처음 데이트를 할 땐 갈 곳도 많고, 할 것도 많아 보였다. 세상에 지천으로 널린 게 예쁜 카페였고, 산책하기 좋은 코스도 조금만 검색하면 바로바로 등장해줬다. 심지어 학창시절 지겹게 갔던 고궁이나 유적지를 데이트 코스로 찾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데이트도 하루 이틀이다. 카페는 어딜 가든 다 비슷해 보이고, 커피 가격도 은근히 압박이 심하다. 레스토랑을 찾아다니거나 맛집을 찾는 것도 연애 초반에나 열을 올리고 갈 뿐, 나중에는 늘 가돈 곳을 답습할 뿐이다.
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데이트 코스를 인터넷 검색창에 치면 신사동의 가로수길이나 반포동의 서래마을, 종로의 삼청동이나 북촌 한옥길 정도가 조금씩 다른 이름을 하고 최고의 코스라며 쏟아진다. 물론 이런 곳도 한두 번 가보기엔 좋을 수 있다. 한적한 주말 오후,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곳을 찾아가면 어린이날 놀이공원에 잘못 들어간 것처럼 커플들로 미여 터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복잡하고 뻔한 데이트 코스를 피하고 둘만의 기억에 남는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코스는 없는 것일까?
기억에 오래 남는 데이트 코스는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나가면 단번에 해결된다. 해외로 떠난다는 설렘도 있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추억 한 번 만들자고 데이트 때마다 비행기를 띄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극단적인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도 물론 존재 한다.
기억에 남는 데이트를 하려면 남들이 좋았던 곳, 남들이 후기를 잘 쓴 곳을 찾아갈 것이 아니라 둘만의 이야기가 있는 코스를 찾아야 한다. 실제로 여행사의 유명한 관광 상품들 중에도 나름의 스토리텔링이 탑재 되면 시시하고 볼 것 없던 여행지가 갑자기 지상 최고의 여행지로 변모한다고 한다. 데이트도 마찬가지다.
평소 데이트 하면서 함께 봤던 영화나 함께 공감했던 소설책의 배경이 되는 곳을 찾아가보는 건 어떨까? 어렸을 때 살았던 옛 집을 찾아가는 것도 좋은 이야기 거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학창시절 하교 하면서 들렸던 떡볶이 집은 아직 있는지, 외상을 달아 뒀던 문방구는 주인이 바뀌지 않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지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한다.
여자들은 모두 아기자기하고 비싼 인테리어로 치장을 한 카페나 레스토랑을 좋아할 거란 생각은 착각이다. 그녀들도 저렴한 테이크아웃 커피에 감동할 수 있고,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먹는 우동 한 그릇에 만족 할 수 있다. 데이트가 알차고 즐겁다면 얼마든지 저렴한 방법으로 멋진 추억거리를 만들 수도 있다. 열심히 코스를 짜고, 남들이 좋았다던 곳을 답습하듯 따라가는 것은 체력을 낭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런 지루한 방법은 날려 버리고, 둘만의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솔로 시절 외로움을 보상받는 기분으로 그녀를 위해, 또 자신을 위해 코스를 만든다면 더 없이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데이트 전에 그녀의 구두가 높은지 낮은지 확인하는 것은 그녀에게 센스 넘치는 남친으로 보일 수 있으니 참고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