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마음은 알 수 없는 갈대라지만 유독 눈에 띄는 여우 짓으로 남자를 조련하는 경우를 목격할 때가 있다. 순진한 얼굴에 가녀린 비주얼을 하고, 보호심리를 자극하는 말투로 남자의 애간장을 태우는 모습을 볼 때가 바로 여자가 아홉 개의 꼬리를 활짝 펴고 본능에 충실한 여우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여자의 여우 짓을 알아차리고 쿨하고 시크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여우의 놀림에 휘둘리지 않고, 사나이다운 사나이로 여우 사냥을 해서 조련의 기술을 역전할 수 있는 것일까?
평소 긴 생머리와 순한 눈매로 그 일대 남학생들의 첫사랑 역할을 도맡아 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누가 뭐라 해도 순박한 강아지 상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특히 그 착해 보이는 눈매는 그녀가 사회에 나가서 어떤 고난을 겪을지 걱정이 될 정도로 순수하고 깨끗함 그 자체였다. 그러니 그녀 주변의 남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별일 없이 잘 살고 있는 그녀를 지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만약 그녀가 그 얼굴처럼 순진하고 철없는 여인이었다면 그녀에게 목숨 거는 남자 중에 한명 잘 골라서 결혼하고 애 낳고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겉보기와는 전혀 다른 본성을 숨기고 있었다. 바로 순백색의 눈부신 꼬리털을 가진 백년묵은 구미호 같은 여우의 본성을 순박한 얼굴 뒤로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남자를 구워삶는 방법은 간단했다. 쓸만한 남자가 접근하면, 부끄러움과 내숭으로 점철된 행동으로 남자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버리고, 조금 넘어왔다 싶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하는 것이었다.
뭐 이런 무식하고 속 보이는 방법이 통했을까 싶겠지만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갈대처럼 나긋나긋한 그녀가 쓰러지는 순간, 남자는 전날 밤까지 토사곽란으로 젓가락 들 힘도 없는 상태에서 단숨에 쓰러진 여인을 안고 병원으로 전력 질주하는 헐크 같은 힘의 소유자로 돌변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다 앓는다는 빈혈을 앓고 있었고, 병원에서도 워낙 자주 실려와서 얼굴만 보고 접수증이 나올 정도로 단골 중에 단골이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매번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병원에 실려 온 다음부터는 남자는 먼지 밖에 안남은 자신의 지갑을 팔아서라도 여자에게 선물을 바치고, 그녀의 말 한마디에 부산에서 서울로 달려와 기사 노릇을 하는 신세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여우 짓은 한 번에 한 남자로 만족하지 않았다. 워낙 쓰러질듯 애처로운 연기를 잘 했던 그녀 곁에는 그녀를 지켜야 한다며 기사도에 불타는 남자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고, 덕분에 자신이 그녀의 유일한 기사라고 생각하는 남자들도 넘쳐나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타고난 여우 짓으로 원하든 원하지 않던 양다리에 문어다리를 뻗친 여자가 된 것이다.
물론 그녀의 건강은 남의 염려를 살 정도로 심각한 증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남자 앞에서 쓰러져 본 경험이 있었고, 그 이후 지고지순하게 자신을 간호해주는 남자에게 반해 남자를 만날 때마다 쓰러지는 기술을 발휘하는 것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은 아쉬움 없이 기꺼이 도와줄 때 즐거운 것이고, 받는 사람도 감사하는 마음이 전해져야 보람이 있는 일이다. 혹시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의 노예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사랑이라고 혼자 느끼고, 사실을 수발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주변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