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지처를 버리면 죄를 받을까? 글쎄 남성들은 아니라고 하고 싶은 것이며 여성들은 당연히 죄를 받는다고 하고 싶을 것이다. 아마도 이 말이 생겨나게 된 동기 역시 바람기 많은 남자에게 배신의 대가를 알리고 싶은 여성들의 의도라 생각된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서리가 내린다는 말처럼 정말 여자의 한은 무섭고 끔찍할 때가 있다. 이런 이야기가 유교적 사상이 뿌리 깊었던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조강지처의 서슬과 분노 그리고 복수는 그리스신화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기원전 아테네에서 연극으로 공연되었는데 이아손이라는 남자가 자신의 황금양의 모피를 되찾기 위해 아이아의 나라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이아손은 아이에테스 왕의 딸 메디아를 만나게 되고 메디아는 젊과 잘생긴 남자 이아손을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해버렸다.

이아손에게 푹 빠져버린 메디아는 그를 도와 그의 황금양의 모피를 되찾게 도와주고 그와 함께 도망을 치려고 했다. 그러나 메디아의 아버지와 남동생은 황금양 모피를 가지고 도망가는 이아손을 가만두려고 하지 않았다. 남동생은 군사들을 이끌고 두 사람을 쫓아간다. 결국 메디아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남동생마저 죽이면서까지 아이손과의 사랑을 관철시키게 된다.

메디아는 아이손과 함께 도망쳐서 그와 결혼하고 두 아들을 낳아 행복하게 살았지만 그 행복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어느 날 이웃나라 코린토스의 왕이 이아손에게 자신의 딸과 결혼을 해서 왕위를 이어 달라고 제안하였고 이아손은 젊고 아름다운 아내와 왕권을 놓치고 싶지 않아 메디아를 배신하려고 마음먹게 된다.

이아손은 메디아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줄 것을 요구하지만 아버지를 배신하고 동생을 죽이면서까지 이아손을 사랑했기에 메디아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또한 동생은 죽인 메디아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메디아는 지금껏 이아손에게 헌신적이었는데 그 결과가 겨우 배신이라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결국 메디아는 이아손이 결혼하려고 하는 왕녀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메디아는 이아손의 결혼을 축복한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이아손과 결혼할 왕녀에게 결혼 선물로 금으로 수를 놓은 비단 옷과 금관을 전해달라고 하며 이아손에게 건네준다. 이아손은 자신의 조강지처로부터 받은 선물을 들고 기뻐하며 왕녀에게 달려간다.

왕녀는 이아손이 가져온 선물을 보고는 너무 황홀해하며 비단옷과 금관을 머리에 썼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왕녀의 눈에서는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금관과 옷에서 불길이 솟았다. 왕녀는 필사적으로 금관을 벗어버리고 옷을 찢으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온 몸에 불이 붙어 피와 살이 녹아버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아손은 놀라서 그녀에게 달려가 그 옷과 금관을 벗기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왕녀는 그렇게 흉한 몰골로 죽어버렸다. 왕녀가 죽자 화가 난 이아손은 메디아에게 달려가 소리쳤다.

“메디아! 어디 있어! 무서운 계집 빨리 나오지 못해!”
이아손이 소리치자, 순간 문이 열리면서 한 손에는 칼을 든 피투성이의 메디아가 나타났다. 이아손은 갑자기 섬뜩한 생각이 들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이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 이아손은 아이들의 시신을 붙들고 목 놓아 울부짖었다. 그러나 메디아는 냉정하게 말했다.
“어차피 나와 함께 버리려고 했던 아이들 아닌가! 이 아이들은 당신이 죽인거야! 당신에게 모든 것을 바쳐온 아내를 배신한 대가라고 자! 그 대가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봐봐!”
이아손을 메디아의 무서운 기세에 놀랐고 소름이 끼쳤다.
“배신자! 나는 너를 끝까지 증오하면서 살 것이다.”

그 후 이아손은 모든 이들로부터 신의를 잃어 한 사람의 친구도 없이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다가 굶어 죽고 말았다고 한다.

조강지처를 배신한 남자의 말로 치고는 너무나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기원전 431년 아테네에서 이 연극이 공연되었고 아테네의 심사원들은 이 연극을 그 해의 최악의 연극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이 그리스 신화는 남성들이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는 최악의 상황일 것이다. 특히 그 시대엔 남자에게 순종을 해야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당시 이러한 내용의 연극의 공연은 그야말로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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