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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칼럼
관기와 불장난을 하다가 거지꼴이 된 서기관
최초작성날짜 : 2013-07-22 09:35:57, 글자크기   

신분고하,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누구나 한 번 쯤은 잊지 못할 사랑을 경험한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뜨거운 사랑을 경험 한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굉장히 로맨틱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결국 누구나 한 번 가슴 아픈 이별을 한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어린 시절 멋모르고 저질렀던 풋사랑, 아플 줄 모르고 그저 달릴 줄만 알았던 막무가내의 사랑은 큰 상처와 이별 끝에 평생 잊지 못할 사랑으로 남는 경우가 많이 있다.

결혼 후 며칠 만에 홀로 나주에 부임한 서기관 정통 역시 이런 막무가내 사랑을 나누었고, 딸과 여자를 남겨둔 채 가슴 아픈 이별을 겪어야만 했다. 그가 탄 말은 고향 송도로 돌아가고 있지만 마음만큼은 사랑하는 관기 소매향의 옆에 남아 있었고, 아직 핏덩이인 어린 딸이 눈에 밟혀 눈물이 멈추지 않는 지경이었다.

나주에서 송도까지는 말을 타고도 몇날 며칠을 가야 하는 머나먼 여정이었다. 중간에 남경(지금의 서울)을 들러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 쉬어 가기로 했다. 고된 여정 끝에 친구의 집에 당도한 정통은 술 한 잔에 그리움이 더욱 사무치는 듯 했지만 그의 친구는 정통의 이런 모습이 우스울 뿐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관아 기생을 잊지 못해 저리 힘들어 한다니, 사나이의 채면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술에 취한 정통은 결국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말을 달려 하루 종일 왔던 길을 돌아가기에 이른다. 이제 다시는 남편을 못 볼 거라 생각했던 소매향은 돌아온 남편을 보자 기절할 듯 놀랐고, 정통은 딸과 소매향을 품에 안고 자신이 다 알아서 할테니 함께 송도로 올라가자고 설득했다. 소매향은 이제 관기에서 벗어나 양반의 어엿한 첩실이 될거란 생각에 뛸 듯이 좋아했다. 정통 역시 더이상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날아갈듯 좋았고, 더 이상 지체할 것 없이 떠나자며 말을 데려와 그녀를 태웠다.

정통은 이제 양반 체면이고 뭐고 다 벗어 던지고 한 손에는 말 고삐를, 품 안에는 어린 딸을 안고 길을 떠났다. 나주에서 송도로 가는 길은 굉장히 험했다. 먼지와 진흙들로 뒤덮이고, 소매향이 탄 말에서 나오는 땀과 침에 옷까지 엉망이 되었다. 번듯했던 서기관의 모습은 눈곱만큼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정통의 마음만큼은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품에 안은 아기가 울든 말든, 지친 말이 흙탕물을 튀기든 상관없었다.

정통과 딸, 소매향이 송도로 도착할 때쯤이었다. 저 멀리 화려한 가마가 그들의 길 쪽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정통은 아무 생각 없이 가마 옆을 지나치려 했지만 그의 얼굴을 알아본 가마꾼이 서둘러 그를 잡아 세우는 것이었다. 가마 안에는 송도에 남기고 간 조강지처가 타고 있었다. 놀란 정통은 아내를 보자마자 갑자기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강지처 역시 그동안 편지 한통 제대로 보내지 않았던 남편이 관기의 마부가 되어 거지꼴로 나타나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통은 아내의 손을 잡고 모두 심심풀이 놀이 삼아 말을 끌고 간다고 급하게 해명을 했다. 아내는 혼인 후 몇 년 만에 처음 본 남편의 꼴을 보고는 “심심풀이로 노는 꼴이 이정도면 아예 판을 벌리고 놀면 거지 중에 상거지가 되겠네요!”하고 쏘아 붙이고는 그대로 친정으로 떠나 버렸다.

말 위에서 이 모습을 모두 내려다 본 소매향 역시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정통에게 차갑게 돌아서며 말고삐를 낚아채고는 “심심풀이 놀이가 염치없이 송도 땅까지 밟았으니 이제 돌아가렵니다.”하고 쏘아 붙이고 그대로 말을 몰아 나주로 돌아갔다고 한다.

어느 드라마나 소설을 보더라도 조강지처를 버리고 떠난 주인공은 결국 후회를 하며 결말을 맺곤 한다. 물론 현실과 드라마를 같은 기준으로 보기는 힘들지만 어쨌거나 그들의 주는 교훈은 일맥상통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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