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와 나무꾼 전래동화를 보면 사냥꾼에게 쫓기던 사슴이 나무꾼에게 달려와 도움을 청하고, 사슴은 목숨을 살려준 보답으로 선녀들이 목욕을 하는 계곡을 가르쳐 주게 된다. 아무리 선녀라지만 그녀들도 여자들인데 목욕하는 장면을 들켜서 좋아할 선녀들은 없었을 것이다. 나무꾼은 목욕을 훔쳐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선녀의 옷까지 훔쳐버린다. 그리곤 날개옷을 빌미로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게 된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전래동화지만 그 속 내용을 들여다보면 낯부끄러워지는 장면들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아이들을 위한 전래 동화 중 그 의미는 교훈적이지만 사이사이에 그 시대의 성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단서들이 숨어 있다. 아라비아의 전래 동화 속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숨어 있다.
옛날 아라비아의 여러 왕자 중에 나이가 어리고 매우 순진한 왕자가 한 명 있었다. 보통 왕자들은 후궁을 여럿 두고 밤낮 없이 여인들을 품고 지내기 일쑤였지만 이 왕자는 여자와 재미를 볼 줄 몰랐고, 큰 관심조차 없었다. 그저 성 외곽에 홀로 나가 산책을 하며 들과 꽃을 보는 것을 즐길 뿐이었다.
그 날도 왕자 홀로 밖으로 나가 숲속을 거닐고 있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조용했던 숲에서 홀로 꽃과 곤충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차였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멀리서 덩치가 산만한 남자가 어깨에 대리석으로 만든 관을 이고는 왕자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왕자는 깜짝 놀라 나무 위로 몸을 숨기고 거대한 남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왕자가 숨어 있는 바로 그 나무 밑에서 대리석으로 만든 관을 내리더니 관 뚜껑을 열어 아름다운 여인을 꺼내는 것이다. 왕자는 나무위에서 숨죽이고 기다렸고 남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자리에서 여인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었다. 왕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에 빠져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몸집이 거대한 남자는 곧 지쳐서 여자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골아 떨어졌다. 바로 그 때 그 여인이 고개를 들어 나무 위에 있는 왕자를 올려다보았다. 위치를 들킨 왕자는 허둥대며 나무를 내려와 도망가려 했지만 여인에게 빼앗긴 마음 때문에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인은 그대로 왕자의 팔을 잡아끌고 아무도 없는 으슥한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왕자의 손발에 입을 맞추고 함께 즐기자고 유혹하는 것이다.
왕자는 그대로 넋이 나가 여자의 요구를 들어 주었고, 둘은 사랑을 나누었다. 사랑을 나누고 왕자가 옷을 찾아 입는데 여자가 왕자의 손가락을 보며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보석이 박혀 있는 반지를 정표로 달라고 요구했다. 왕자는 이번에도 거절하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받은 화려한 반지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비단으로 만든 주머니를 꺼내서 왕자의 반지를 넣어 두는데 주머니 안에 반지가 수십, 수백 개나 들어 있는 것이었다. 왕자는 어디서 그렇게 많은 반지를 구했느냐 물었다. 여자는 슬픈 듯 웃으며 자신의 속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원래 이곳과 멀리 떨어진 나라의 공주였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덩치 큰 사내에게 납치를 당했고, 대리석으로 만든 관속에 갇혀서 풀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내는 여행을 다니며 자신이 원할 때마다 관을 열어 자신을 취했고, 사내가 잠이 들 때마다 자유를 만끽하며 주변에 있는 모든 남자들과 눈을 맞췄다는 이야기였다. 공주는 정을 통한 남자들의 반지를 받아 간직하며 자신의 신세를 위안 받았다는 것이었다. 왕자는 그런 공주를 딱하게 생각하며 반지를 잘 간직하라고 말하고 성으로 돌아왔다.
보통 왕자와 공주가 등장하는 전래동화를 보면 백마 탄 기사처럼 나타나 괴물을 쓰러트리고 공주를 구해오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색다른 동화에선 남자가 자신의 위치를 성찰해 보며 끝을 맺게 된다. 조금은 허탈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들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자아성찰과 성에 대한 의미가 얼마나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