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대화에서 보고 싶지 않은 숫자

사귀는 사이든, 썸 타는 사이든 휴대폰 메신저로 대화를 하다 보면 절대로 보고 싶지 않은 숫자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1이다. 물론 대화를 하는 중에 내용으로 언급되는 숫자 1 말고, 메신저 자체에서 메시지를 보냈을 때 뜨는 숫자 1을 말한다. 이 숫자는 상대방이 나의 메시지를 읽으면 자동으로 사라지고, 확인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다. 즉, 아무리 길게 대화를 하고 길디 긴 메시지를 보내더라도 메시지 창 앞의 숫자 1이 없어지지 않으면 그녀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캠퍼스 커플이나 사내연애처럼 하루 종일 함께 있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두 사람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는 휴대폰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사랑을 확인한 사이가 아닌 막 사랑을 쌓아가고 있는 사이라면 휴대폰의 존재는 더욱 절실하다. 많은 경우, 그 간격의 차이가 있을 뿐 일어나서부터 잠들기 전 까지 가끔씩이라도 계속해서 좋아하는 상대와 연락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일과를 공유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기에는 휴대폰 메신저만큼 편리한 연락 수단도 없다. 더구나 서로의 마음을 확실히 확인하지도 않았고, 사귄다는 약속도 없으며 호감만 가지고 있는 이들은 연락처나 휴대폰 메신저의 대화만으로 서로의 호감도나 상대의 반응을 파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바로 어젯밤까지도 메신저로 즐겁게 대화하다 다음날부터 1이 며칠이나 없어지지 않으며 아예 연락이 끊기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1이 사라지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보통은 여기에 메시지에 대한 답이 점점 짧아지는 변화를 동반하곤 한다) 조금씩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이 휴대폰 메시지의 숫자 1에는 큰 의미가 숨겨져 있다. 숫자 1의 유무에 수많은 남녀가 울고 웃기도 한다. 호감 가는 그녀에게 보낸 메시지에 언젠가부터 1이 사라지지 않는가? 몇 시간이면 모르겠지만 며칠 째, 또는 몇 주 째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는 곧 그녀의 마음이 떠났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남자들은 보통 이런 상황에서 자기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 들곤 한다. 그녀가 일이나 과제로 며칠이나 바빠서 메시지 확인을 못했을 거라든지, 휴대폰이 고장 나서 새로 바꾸느라 오래 걸릴 거라든지, 불의의 사고를 당했거나 몸이 아파서 일거라고 걱정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녀와 연락이 끊긴 것이 정말 불가피한 이유 때문일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이는 거꾸로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정말 상대에게 계속 관심이 가고 호감이 생긴다면 아무리 바쁘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도 어떻게든 연락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자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나에게 이성적으로 끌린다면 바쁘더라도 연락을 끊을 이유가 없고, 몸이 아프거나 무슨 일이 있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알리고 도움을 청하거나 양해를 구할 것이기 당연하다.

또 한 가지, 그녀는 이미 내 메시지를 읽고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일 수도 있다. 많은 휴대폰 메신저들은 직접 해당 앱에 들어가 읽지 않고도 알림 창에 메시지 내용을 띄워 확인하게 해 주는 기능이 있다. 즉, 1이 없어지지 않고도 무슨 내용인지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그녀가 나와 대화를 연장할 생각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된다. 나와의 관계를 단절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대화를 주고받을 만큼 흥미롭지도 않으며, 메시지를 보내지 말아달라고 말하기도 곤란할 때 그녀는 그저 ‘못 읽은 것처럼’ 내버려 두는 것이다. 완곡한 거절의 뜻으로 쓰기에 휴대폰 메신저의 숫자 1은 어쩌면 가장 좋은 핑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