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이성교제를 반대하는 기성세대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무엇일까? "연애는 대학 가서 해라" 일 것이다. 물론 이성 교제가 보편화 되어 있는 지금의 10대들에게는 전혀 먹혀들 말이 아니지만 말이다. 더구나 요즘 대학 생활은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다, 학과 성적을 위한 과제다, 시험이다 해서 옛날처럼 낭만적이지가 않다. 또, 대학 문턱부터 수 천 만원의 학자금 대출을 등에 지고 들어온 학생들이라면 공부 뿐 아니라 학비까지 만들어야 하니 이만저만 힘든 것이 아니다. 이렇다 보니 대학 생활에서 단체 미팅이니, 캠퍼스 커플(CC)이니 하는 것들은 속 편한 시절의 낭만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런데, 대학 강의실에서 학생들의 '썸'을 이어주거나 단체 미팅을 시켜준다면 어떨까? 특별한 날 연애 비법에 대해 '썰'을 풀어 놓는 특강이 아니라 정식으로 수강 신청을 하고 한 학기 수업을 마치면 시험도 보고 성적도 나오는 정규 강좌에서 말이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에는 한 학기 동안 가상 연인을 만들어주는 수업이 있다. 비록 전공 수업이 아닌 교양 수업이지만 2014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SBS가 뽑은 '대학 100대 명강의'에 선정되기도 했다.
수업이 시작되면 학생들은 모두 자기소개를 한다. 그 후 자신이 특별히 마음에 들었던 이성을 쪽지에 적어낸다. 이렇게 쪽지로 서로가 서로를 고른 학생이 있다면 한 학기동안 가상 커플을 이루고, 커플이 되지 못한 경우에도 랜덤으로 배정된다고 한다. 각 가상 연인들은 수업 시간에 옆자리에 앉아야 하고, 과제로 함께 데이트를 하거나 장을 보거나 집에 바래다주는 등의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비록 진짜 사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실제 연인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과 그 해소를 미리 체험해 보며 남녀 관계, 더 나아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태도를 돌아보고 새로이 배우며 재정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이 수업에서 가상 연인을 거쳐 실제 연인이 된 커플도 여럿 있고, 그 중에는 상견례까지 마치고 결혼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 수업은 그렇지 않아도 ‘전쟁’으로 표현될 정도인 수강 신청 경쟁, 그 중에서도 가장 빨리 마감되는 수업 중 하나이다.
그러나 자기소개의 호감으로 시작했으나 ‘너무 깨는’ 파트너와 한 학기 내내 싸우다 리포트도 엉망진창으로 내고 성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증언도 있고, 원래 짝이 있는 학생이 해당 수업에서 만난 가상 연인 때문에 진짜 연인과 헤어지고 말았다는 부작용(?)도 있다.
이 수업의 인기 여파로 다른 대학에서도 성(性) 관련, 결혼, 가족 관련 교양 강좌들이 유사한 커리큘럼을 선보이기도 한다. 조를 짤 때 마음에 드는 이성을 비밀리에 조사해 한 조로 만들어 주는 수업, 자신의 실제 연애 실패담을 리포트로 내면 추가 점수를 주는 수업 등이 있다. 연애와 전혀 관계없을 것 같던 ‘학교 공부’가 실생활에 보다 도움이 되는 진정한 배움의 장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다.
어쩌면 ‘연애는 대학 가서 하라’던 어른들은 정말로 대학에서 연애를 배울 수 있다는 소식에 오히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비싼 돈 들여서 학교에서 연애질이나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연애를 배울 수 있는 대학 수업은 자력으로 연애할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는 요즘 대학생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씁쓸한 현실이자,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만을 가르치던 상아탑의 반가운 변화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