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날
어느 결혼 정보 회사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밸런타인데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한 남녀의 비율이 남자는 90%, 여자는 80%에 달했다. 아이러니 한 것은 한국에서는 밸런타인데이를 보통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 또는 선물을 주는 날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받는 사람이 더 부담스럽다는 뜻일까? 그보다는 한국에만 있는 밸런타인데이의 여성 버전(?)인 ‘화이트데이’ 에 대한 부담으로 읽혀진다.
밸런타인데이에 마음에 둔 남자에게 초콜릿과 선물, 편지 등으로 속마음을 고백한 여성들은 한 달 뒤인 화이트데이(3월 14일)에 피드백을 받게 된다. 또는 좋아하는 여성이 있는 남자가 화이트데이에 그녀에게 고백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데, 이 때 밸런타인의 초콜릿에 대비되는 것이 사탕이다.
밸런타인데이의 유래는 매우 다양하다. 로마의 발렌티노 성인이 결혼 금지법을 어기고 연인들을 결혼시켜 주다 사형 당했다는 설, 2월 14일부터 새들이 교미를 시작하기 때문에 연인들의 날로 정해졌다는 설, 일본의 한 백화점이 ‘밸런타인데이에는 사랑을 고백하세요’ 라는 카피와 함께 초콜릿을 팔기 시작한 데서 왔다는 설 등 정확한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그럴듯한 유래들이 있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선물이나 카드를 교환하고, 이미 교제중인 연인들이 사랑을 확인하는 날로 보내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보통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며 고백을 하는 기회로 삼는다.
그런데 처음에 언급했던 설문조사로 돌아가서, 2천 명 중 1800명이 넘는 남성들은 왜 밸런타인데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한 것일까? 다른 커플이 알콩달콩 초콜릿을 교환하는 게 꼴 보기 싫어서? 그렇지만은 않다. 설문에 답한 남성들이 모두 싱글남은 아니었다. 이미 연인과 교제중인 남성도 있고, 유부남도 있었다. 이에 대한 답은 밸런타인데이 자체가 아니라 화이트데이에서 찾아야 한다. 바로 지나친 상업화와 일부 여성들의 ‘놀부 심보’가 문제이다.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 폐지에 대단히 적극적인 남성 중 한 명인 A군은 2월 14일과 3월 14일에 허리가 휜다. 밸런타인데이에 여자 친구로부터 선물과 초콜릿을 받지만 교포 출신인 A군은 밸런타인데이에 원래 연인과 선물을 교환하는 문화에 익숙하기에 그 역시도 여자 친구에게 초콜릿과 선물을 준다. 문제는 그 다음 달이다. 선물을 교환하는 것으로 끝난 줄 알았던 밸런타인데이는 화이트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오고, 이 날의 주인공은 여자 친구다. A군으로서는 선물을 두 번 준비해야 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밸런타인데이만 챙기고 화이트데이는 무시하자니 여자 친구가 서운해 할 것이고, 한국식 문화에 따라 밸런타인데이에는 자기가 받고 화이트데이에 여자 친구를 챙겨 주려니 갑자기 밸런타인데이에 주던 선물을 주지 않아 여자 친구가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자신이 생각해도 치사해지는 것 같다.
의외로 많은 커플들이 이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의 균형(?) 때문에 다툼을 벌이고, 다툼의 원인은 A군 커플과 같은 이유라고 한다. 화이트데이 덕분에 남자들은 선물을 두 번 사서 바쳐야 할 판이니, 열에 아홉은 밸런타인이고 화이트데이고 없어져 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수밖에.
짝사랑에 마음 졸이고 있는 사람에게는 달콤한 고백의 기회가 되고,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에게는 하루의 즐거운 이벤트가 될 수도 있는 밸런타인데이. 그러나 지나친 상업주의와 일부 이기적인 여성들에 의해 그 의미가 퇴색된다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