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만렙은 없다-

한 여자가 연인과 함께 클럽에서 춤을 추고 있다. 어색하고 뻣뻣한 웨이브에 남자친구는

이내 섹시한 춤을 추는 다른 여자를 바라보고, 여자는 굳은 결심을 한 듯 남자 친구 앞에 팔다리와 엉덩이를 털며 춤을 춘다. 그러나 그 몸짓은 유인원을 흉내 내는 듯 우스꽝스럽다. 뒤이어 나오는 장면은 여자가 '남자친구 유혹댄스'를 검색창에 쳐서 설명대로 춤을 춰 보는 모습이다.

이는 몇 년 전 크게 유행했던 '춤을 글로 배웠습니다'라는 제목의 인터넷 포털사이트 광고이다. 이 광고는 많은 패러디를 양산하여 지상파 시트콤에서 '애교를 글로 배웠습니다'라는 에피소드가 나올 정도였다. 결국 **를 글로 배웠습니다 시리즈의 결말은 모두 '글로 배우면 안 된다' 이다. 그런데 아직도 글로 배우면 안 되는 것들을 글로 배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연애다.   

 

'남자에게 카톡이나 문자 답 보낼 때는 10~15분 정도 기다렸다 하세요. 바로 답톡 날리면 기다린 것 같아 보여 흥미 떨어짐', '먼저 다가갈 용기가 안 난다면 문자나 메신저로 어느 정도 편안한 분위기가 될 때까지 이야기하세요, 그렇다고 다음날 얼굴 봤을 때 나 몰라라 하면 말짱 도루묵!'

얼핏 보면 중고등학교 학습 첨삭 지도 같은 이 친절한 조언들은 인터넷에 '연애 스킬'이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연애 조언들 중 하나이다. 이외에도 연애 스킬, 연애 기술이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수백, 수천의 기술들이 쏟아져 나온다. 또, 오늘도 인터넷에는 '얼굴 보고 인사하는 과정까지는 갔는데 데이트 신청을 못하겠어요. 스킬이 조금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여친과 시간 약속 문제로 크게 싸운 뒤에 연락이 끊겼어요. 화를 풀어주고 싶은데 연애 하수라 기술이 모자라요' 따위의 연애 공략을 구걸하는 글도 가득하다 

이처럼 사랑과 연애를 하나의 거대한 게임으로 인식하고 개별 퀘스트에 대한 팁을 찾는 이른바 '연애 쪼렙(낮은 레벨)'들과, 픽업 아티스트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장난들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100% 성공하는 연애 기술'따위를 늘어놓는 '연애 만렙(최고 레벨)'들로 수요와 공급이 완벽히 맞아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연애 스킬이 과연 도움이 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NO'이다.

28년 모태 솔로 인생에서 마침내 연애에 성공한 남자가 있었다. 회사 거래처에서 만난 여직원에게 고백을 해서 승낙을 받은 것이었다. 여기까지의 과정에는 그가 매일같이 들르던 연애 스킬 전문 블로그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이 블로그에서 배운 고백 방법과 첫 데이트 스킬을 통해 여자 친구를 얻을 수 있었기에 그에게 블로그의 존재는 성경이나 코란과도 같았다. 연애를 시작한 후에도 그의 연애 기술 숭배는 여전했고, 블로그에 올라온 기술들을 그대로 써먹었다. 블로그는 다툼, 명절과 기념일, 여행 등 연애를 하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쓸 수 있는 방법들도 친절하게 카테고리화 해 두었고 그는 필요한 상황만 찾아보면 되는 것이었다. 이 모태솔로남의 첫 연애는 어떻게 되었을까? 예상대로 대 실패, 그는 블로그에 나온 ‘100일 잘 챙기는 법’은 써먹지도 못한 채 두 달 만에 보기 좋게 차였다.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나오는 말들과 틀에 박힌 행동... 여자 친구가 떠나면서 남긴 말은 ‘연애는 글로 배우면 안 돼’였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는 당연히 정답도 공략도 기술도 없다. 프로그래밍으로 정확히 짜여 있는 게임이나 공식에 숫자를 대입하는 수학 문제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글로 배우는 연애 스킬이 어느 정도 도움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턱대고 기술만 써먹는다면 그건 이미 나의 연애가 아니라 그 기술을 전수한 누군가의 연애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