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유럽에도 ‘유흥 관광’이 있었다?
중국과 필리핀의 여행을 통해 유흥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있다. 남자들이 그곳을 찾는 이유는 물가가 낮아 한국에서 하루 즐길 돈으로 그곳에선 며칠 동안 왕처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관광지에서 유흥을 즐기고 싶어하는 이러한 심리는 과거 유럽에서도 있었으며, 그것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거의 유흥관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17, 18세기 유럽의 고급 창가에는 황제가 하사한 커다란 깃발이 꽂혀 있었다고 한다. 과거 외국인 관광객들은 각 도시의 창가를 둘러본 후 여행갈 도시를 정하였기에, 왕이 인정한 고급 창가라는 뜻의 깃발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데 큰 몫을 하였다. 주로 런던, 파리, 베를린에 몰려 있었던 이러한 고급 색주가들은 겉은 매우 우아해 보였으나, 실상은 상상을 초월 할 정도로 더럽고 추악하였다. 물론 초기에는 형식과 품위를 지키느라 정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영업을 하였으나, 점차 억압 되 있던 욕망들이 분출하면서 지저분한 곳으로 변모해 갔던 것이었다. 창가에서는 더 이상 외설적일 수 없을 정도의 선정적이고 난잡한 파티들이 열렸고, 나체의 창녀들이 손님들에게 각종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음란함을 부추겼다. 또한 특이하고 정교한 도구들이 즐비한 고문실도 따로 마련되어 있어, 변태적 성 행위를 즐기는 이상성욕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밤마다 광란의 파티가 이어졌던 색주가에서는 옷을 벗고 공연하는 에로틱한 공연도 자주 상연 되었다. 에로틱한 공연은 누구나 참여 가능한 무대였기에, 어떤 이들은 나체로 창녀를 끌고 올라와서는 적나라한 섹스 행위를 연출하며 사람들의 호응을 얻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과거 유럽의 고급 색주가에서는 돈이면 안되는 것이 없었고, 창녀들 또한 순진한 어린 소녀에서부터 요염한 중년 부인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었기에, 외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도 외국인들을 위한 색주가가 있었을까.
오래 전 서울 홍제원에는 ‘색주가’라고 하여 여자가 접대하는 술집이 즐비 하였는데, 그곳은 색색의 분칠을 하고 화려한 의상을 입은 젊은 여인들이 목로에 나와 앉아 아양도 부리고 노래도 하던 음식점이었다. 당시 이러한 색주가들이 홍제원에 몰려 있었던 이유는, 그곳이 중국으로 가는 연결 도로로서 경치도 좋고 서울에서 10 리 이내의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외국의 사절들은 한국에 오면 꼭 홍제원을 들러 유흥을 즐겼고, 그러한 날이면 홍제원 거리가 기생의 노래와 풍류 소리로 시끌벅적 하였다고 한다.
밤 문화 안에도 나라마다의 특색과 문화가 숨 쉬고 있는 법이기에, 유흥을 목적으로 한 광광이라고 하여 무조건 더럽고 지저분하게만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유흥관광이 욕을 먹는 이유는 남자들의 무분별한 섹스 관광 때문일 것이다. 왜 유흥관광은 남자들끼리만 가야하는가. 부인이나 연인과 함께 유흥을 즐길 수는 없는가. 남자들이여. 새로운 곳에서 돈을 써가며 욕망을 채우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말자. 그 돈으로 사랑하는 여인과 여행을 떠나 색다른 유흥을 즐긴다면, 저렴한 돈으로 낭만적인 장소에서의 이색적인 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