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종과 놀아난 권율장군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이 바다 위에서 영웅이었다면 육지엔 행주산성을 지킨 권율 장군이 있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나라를 구한 장군의 이미지는 용맹하고, 늠름하며 조용히 나라의 안위와 백성들을 걱정하는 과묵한 영웅의 이미지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속사정을 조금 찾아보면 얼굴이 붉어질 만큼 솔직하고 유쾌한 일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권율 장군은 대표적으로 성과 본능에 솔직한 장군이었다. 그는 영웅호걸처럼 용맹했으며 젊은 여인들을 좋아했다고 한다. 과거 조선시대의 여종들은 누워있는 소에 올라타는 것만큼 범하기 쉬운 존재였다. 간혹 주인을 잘 만난 여종은 그 댁 첩실로 들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주인으로 모시던 마님의 눈치를 받으며 첩실 생활을 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권율 장군에게는 첩실까지 오르진 않았어도 아끼며 귀여움을 주던 어린 여종이 하나 있었다. 권율의 부인 역시 남편이 마음을 둔 여종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언젠가 뒤를 밟아 크게 혼낼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어느 날 권율의 사위인 오성대감 이항복과 그의 집안 살림이 모두 외출을 하는 일이 생겼다. 기회는 이때다 싶은 권율은 단걸음에 어린 여종의 방으로 달려가 회포를 풀기 시작했다. 늘 나이 많은 부인과 성에 차지 않는 생활을 견뎌왔던 권율은 여리여리한 여종의 속 살 맛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여종 또한 주인의 속마음을 익히 알던 터라 그동안 못 다한 풀 서비스로 주인의 마음을 녹여 버리고 있었다.
여종과 낯 뜨거운 정감을 통하고 있던 바로 그 때, 권율을 상상치도 못한 일이 집밖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이나 그 때나 무섭기는 매한가지였던 조강지처의 매서운 눈빛이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심증은 가는데 이렇다 할 물증을 잡지 못했던 부인은 남편이 여종과 살을 섞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이를 갈기 시작했다.
보통 조강지처, 현모양처를 보면 남편이 밖에서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고 와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 하는 게 대부분일 것이다. 권율장군의 부인이 현모양처가 아닌 것은 아니었지만 남편의 외도를 보고 못 본 척 할 위인은 아니었나 보다. 게다가 물증까지 확보한 상태에서 남편의 못된 버릇을 한 번쯤은 고쳐주고 싶은 욕심까지 생겼다. 기회를 잡은 부인은 단숨에 곪은 이를 뽑기로 마음먹고 남편을 골려주기로 마음먹었다.
부인은 급한 일이 있는 듯 남편을 집 뒤에 외진 창고로 불러냈다. 아내가 집에 온 줄 까맣게 모르고 있던 권율은 깜짝 놀라 대충 옷을 챙겨 입고 아내가 있다는 창고로 달려갔다. 하지만 창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권율이 들어가는 순간 문이 닫히며 안에 갇히게 된 것이다.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지킨 용맹한 장수라도 창고를 잠근 두꺼운 걸쇠는 푸를 방법이 없었다. 그의 몸집은 대대로 우람하기로 유명했으나 부인에게는 꼼짝 없이 잡히고 만 것이다.
권율은 아내에게 통사정을 해보았지만 문을 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동안 벼르고 있던 부인 역시 쉽게 문을 열어 줄 마음이 없었고, 결국 하룻밤을 꼬박 창고에서 보내고 밥 한술 먹지 못한 채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야 했다. 권율장군은 밤이슬의 차가움이나 배고픔보다 아내에게 뒤를 밟혀 창고에 갇혔다는 사실이 더욱 창피했다. 수백만의 군사를 지휘하는 대장의 채면이 영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부끄러움엔 아랑곳 하지 않는 괘씸한 남자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그의 사위 오성 이항복이었다. 장인어른이 창고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은 이항복은 장인을 골려주기 위해 창고를 찾아갔다. 짐짓 아무것도 모른 척 창고 앞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동정을 살피자 골이 난 권율이 대뜸 소리치며 사위에게 창고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이항복은 장인을 조롱하며 부정을 들킨 권율의 부실함에 대놓고 혀를 차기 시작했다. 권율은 자존심을 구기며 사위의 조롱에 조용히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