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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게 없기 때문"
관리자 등록일 : 2023-07-09
작년, 한국 극장가를 강타한 영화중에 ‘관상’ 이란 것이 있다. 이 영화 떄문에 점쟁이들이 대박을 맞았고 성형외과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 영화의 테마는 오직 한가지다. 극중 대사에서 주인공이 토설한 바, “얼굴엔 그의 운명과 삼라만상이 다 들어있다”. 이 간단한 도식(?)하나로 만든 영화에 천만이 넘는 관객이 동원됐다는건 한국이라는 사회의 독특한 특성으로만 가능한 얘기다. 무슨 특성? ‘믿을게 워낙 없는 사회’라 믿기거나 말거나 누군가 어떤 근거(비록 미신일지라도)를 바탕으로 ‘확답’(예언)을 해주기만 한다면 그대로 여과없이 믿고 싶은 사회기질적 특성 말이다.
한때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실패에서 성공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1%가 다르다’ 등등…성공학-처세술을 다룬 서적들이 불티나게 팔린다더니 책대로 따라 해봐야 별무신통인지 그 또한 시들해지던 차, “운명이나 길흉은 이미 정해진 것”이라는 미확인 철학(?)으로 뭉뚱그린 영화가 개봉되자 곧바로 ‘국민영화’로 자리매김 했다. 영화평론가나 심리학자들은 이 영화의 ‘천만관객’ 현상을 놓고 벼라별 진단서를 다 내놨지만 이게 그리 깊히 생각할 일이 아니다. 이유는 정말 간단하다. “어차피 이 세상에선 해결되는 일 없으니까 다른 세상을 동경하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 믿기지 않는 사건들이 매일처럼 계속 터지면, 듣고보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현실을 이탈해 ‘심리적 몽유현상’을 느끼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신비스러운 것’에 의지하게 된다. 서양의 합리주의는 ‘땀 흘린 만큼 돌려 받는다’는 자연 논리 속에서 성장했다. 서양의 자본주의는 열심히 일한만큼 하나님의 축복으로 돈을 모을 수 있다는 신념에 기초해 자라났다. 아무리 땀 흘려 일해도 ‘열매’는 가진자들의 몫이되는 불합리한 세상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팔자타령’을 하게하고 요행수를 간절히 바라게 만들었다.
도무지 세상이 진실과 도리며 법에 따라 움직이지를 않고 있다. 확실한건 아무것도 없다. 언제 무슨 기가막힌 사건이 터질지 늘 불안하다. 합리적 예측이란걸 할 수가 없다. 지금 당장의 확고한 현상이 앞으로 몇시간이나 버텨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떄문이다.어제의 정의가 오늘의 허위가 되고 어제의 우리편이 내일은 악랄한 적군이 된다. 심지어 ‘법’도 마찬가지다. 같은 범죄에 대해 법원마다 판단이 다르다. 언제 어떻게 ‘규정’이란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때 사람들은 ‘점술(占術 )’에 몰입한다. 아무리 착한 심성으로 뼈 부숴지게 일해도 늘 배고프고 늘 뒤처진다. 하루도 등 따뜻한 날이 없으니 하늘을 원망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원망은 뒤집어 보면 하늘에 대한 ‘기원’이 된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못산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모든걸 팔자소관으로 돌리고 삼재 탓으로 인식하며 요행수를 바라게 된다.
한술 더떠 정치인들에게 점술사는 ‘점쟁이’가 아니라 ‘미래판단 자문위원’이다. 증세가 심각한 정치인은 점술사를 24시간 끼고 산다. 미래예측이나 전망능력은 고사하고 당장 현재에도 믿음이 없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미혹의 시대 ‘조선’에서 점술을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반대한 인물은 다산 정약용이다.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할때 역시 흑산도에서 귀양살이중인 형님에게 편지를 썼다.
“주역 아시지요? 하늘을 섬기던 시절의 책 입니다. 그런데 하늘을 섬기지 않는 요즘 사람들이 어찌 옛 사람들 처럼 점이나 치는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요. 주역이 어디 점치라고 쓴 책 입니까. 저는 유배된 직후부터 10여년을 주역 탐독에 몰입했습니다만, 단 한번도 쌀알을 흩뿌리며 주문을 중얼댄 적이 없습니다. 만일 제가 차후 언젠가 조정에 다시 불리워 올려진다면 무엇보다도 점 보는일을 폐하도록 할 것입니다. 주역을 만든 문왕이나 주공이 살아난다해도 점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쩌랴. 그 미신이 우굴거리던 조선시대 사람들보다도 지금의 우리는 더 심하게 점과 복술과 역술과 도참과 점성술을 좇고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용하다는 점쟁이가 오는 10월에 대이변이 있을 것이라고 한마디 했더니 온 국민이 귀를 쫑긋하고 있단다. 왜 그러느냐고? 모르는가. 믿을게 아무데도 없기 때문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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