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욕주의 학교에서 성병이 유행하다?
대한민국에서 초, 중, 고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에 대해 대부분 비슷한 기억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세대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이른바 연식(?)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학교에서 배운 성(性)이란 이른바 올챙이(정자)들이 달걀 프라이(난자)를 만나는 기본적이고도 기초적인 생물학 상식이 다였을 것이다. 덕분에 성적인 호기심이 하늘을 찌르던 청소년들이 성 지식을 배울 곳은 ‘썬데이 서울’ 류의 가십 잡지, 빨간 테이프라 불리던 에로 영화 비디오테이프, 불법 공유된 음란 영상들뿐이었다. 이러한 음란물은 성적인 가치관을 남성 중심으로, 심하게는 폭력적으로, 비뚤어지게 만들 여지가 충분했다. 물론 같은 음란물을 보아도 사회 경험과 학교 외 가정 등의 올바른 교육이 있다면 왜곡된 성 의식을 갖지 않을 수 있다.
최근에는 이 같은 학교 내 성교육이 그나마 많이 발전하여, 피임도구 사용법을 가르친다거나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대단히 민망할 정도의 노골적인(직설적인) 내용을 담은 성교육 자료가 쓰인다고는 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교육감 산하 교장, 교감, 교사들의 결정이며 성교육이 열린 학교가 있는 반면 여전히 올챙이와 달걀 프라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성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도 있다.
그런데, 한국, 일본, 중국 같은 동아시아보다는 성 교육에 더 깨어 있고 개방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성 관계를 일체 금지해야 한다는 금욕주의를 성교육의 가치관으로 삼고 있다면 어떨까? 더구나 금욕주의를 강조한 바로 그 학교에서만 성병에 걸린 학생이 20여명 나왔다면?
이는 미국 서부 텍사스 주(州)의 특정 학군 내 고등학교의 이야기다. 모든 동양인이 성적으로 폐쇄적이거나 성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니듯, 모든 서양인, 모든 미국인이 성에 개방적인 것은 아니다. 특히 텍사스 주는 정치 성향이나 교육 성향이 보수적인 편에 속하는 지역으로, 해당 학교는 1년에 3일간 집중적인 성교육을 실시하는데 이 때 철저하게 강조하는 것이 바로 금욕주의라는 것이다. “미혼인 학생이 이성 관계에서 우선으로 선택해야 할 것은 금욕임을 강조하라.”, “성적인 모든 활동에서 분리되어 금욕적인 태도를 가르치는 데 헌신하라.”, “금욕이야말로 혼전 임신을 방지하는 완전히 유일한 방법임을 강조하고 미성년자의 성적인 행위에는 트라우마가 따른다는 점을 가르쳐라.” 등이 이 학교 성교육 커리큘럼을 짜는 주요 방침이다.
물론 금욕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비난할 대상이 아니다. 학교마다 자신들이 지키는 가치관이 있고, 교육의 신념을 무시해서는 안 되며, 금욕주의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나친 금욕주의 성교육의 결과가 나쁜 쪽으로 뻔히 눈앞에 보이는데도 나 몰라라 하는 자세이다. 학생들이 걸린 성병은 70% 이상이 성관계 때문에 전염되는 병이었다. 해당 학교의 15명당 1명꼴로 성병에 감염되었다면 최소한 5명 중 한 명은 금욕주의 성교육에도 불구하고 성관계를 가졌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콘돔 사용을 지양하고(미성년자의 성관계 자체를 금지하니까 당연히 콘돔 사용은 어불성설이 된다) 올바른 콘돔 사용법도 가르치지 않은 덕에 학생들 사이에 성병이 더욱 유행했다는 예측이다. 그런데도 해당 학교의 교장은 금욕주의 성교육이 전혀 나쁘지 않다며, 교육 커리큘럼에 전혀 수정이 없을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의 교육 이상이 청소년의 현실과 하루빨리 타협되어야 더 이상 몹쓸 병에 감염되는 청소년들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