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욕이 없는 사람들

사랑이라는 것만큼 정의를 내리기도, 종류를 나누기도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감정인지, 행동인지, 어떠한 상태인지도 의견이 분분한데 그 대상에 따라, 또 형태에 따라 분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찍이 플라톤을 비롯한 고대 철학에서는 그 대상과 형태에 따라 육체적(성적)인 사랑을 뜻하는 에로스, 친구 사이의 우정을 뜻하는 필리아, 신과 인간 또는 부모의 자식사랑과 같은 아가페, 육체적인 욕망을 배제한 정신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플라토닉 등으로 구분했다. 이 구분에 따르면 일반적인 이성애자는 에로스적인 사랑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스펙트럼을 더 넓힌다면 동성애의 경우 고대 철학의 기준으로 본다면 변형된 필리아라고 할 수 있겠지만 현재의 기준으로 적용할 때 동성애 역시 에로스라고 보는 것이 맞다. 사랑하고 애착하는 대상에 대한 육체적인 욕망, 즉 성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흔히 ‘플라토닉 러브’, 라든지 ‘우리 관계는 정말 플라토닉 해’ 라는 말에는 연인 간에 육체적 관계가 (아직) 없거나 혹은 연인이라기보다는 동반자, 이성인 친구에 가깝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성이든 동성이든 타인에게 전혀 성욕을 느끼지 않고, 사람을 사랑하더라도 육체적인 욕망이 생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떨까?

이들은 ‘무성애자’ 또는 에이섹슈얼(asexual)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정신적/육체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이성애,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대상으로 한 사랑은 동성애라면 이들의 사랑에서는 ‘육체적’ 이라는 정의가 빠져 있다. 즉, 이성이나 동성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성욕은 전혀 느끼지 않고, 사랑, 연애, 결혼과 같은 삶에서 육체관계를 배제하는 삶을 선호하는 것이다. 일부 무성애자는 아예 타인에 대한 정신적인 사랑조차도 느끼지 않는 경우도 있어 무성애자의 정의는 매우 복잡하게 나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성적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을 공통점으로 하고 있다. 이는 어떠한 정신적, 육체적 충격 또는 질병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 성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거나 공포를 느끼는 ‘증세’와는 별개이며 이는 애초에 ‘무성애자’ 라는 정의와도 맞지 않는다.

육체적인 사랑을 포함하되 그 대상이 이성이냐 동성이냐 만으로도 전 세계가 뜨거운 갈등을 겪고 있는데 여기에 육체적인 사랑을 전혀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무성애자들의 성적 취향은 후천적인 ‘취향’이 아니라 태어났을 때 이미 결정되는 ‘성향’ 이라는 주장이 있어(동성애에 대한 그것과 같다) 일반적인 성욕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혼란스러울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이와 관련한 실험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양 연구소의 연구자들이 숫양의 생산성을 더욱 늘리기 위해 2년간 584마리의 숫양을 대상으로 관찰한 결과인데, 발정기의 암양 두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일정 시간 동안 함께 있게 한 뒤 교미한 숫자를 보자 암양과 교미한 숫양은 56%밖에 되지 않았다. 전체 숫양들 가운데 9%은 다른 숫양에게 관심을 보였고, 놀랍게도 동성애를 시도한 양보다 더 많은 비율인 12%의 숫양이 어떠한 성적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물론 양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연 상태에서 이성을 대상으로 한 성욕이 100% 절대다수는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성애가 다수를 차지한다고 해서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깨어있는 현대인이라면 이해는 할 수 없더라도 존중은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