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닮은 아이를 낳게 해드립니다
한 사람이 자녀를 533명이나 갖는 것이 가능할까?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아닐까? 하지만 정자은행에 꾸준히 정자를 기증하고, 불임부부나 아기만 원하는 미혼모들이 그 사람의 정자를 많이 선택했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남성이 한 번 정자은행에 정자를 기증할 때마다 최소한 1억 마리의 정자가 동결처리 되니 말이다.
물론 그것은 진짜 영화 속 이야기다. 그런데, 한 남자에게서 533명이나 되는 자식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정자은행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아니지만 서양에서는 이미 정자은행에 정자를 기증하고 또 정자은행을 이용하여 임신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그런데, 정자은행을 이용해 성룡, 조니 뎁, 데이빗 베컴 등과 같은 전 세계 유명인과 닮은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어떨까?
미국 캘리포니아의 정자은행은 몇 년 전부터 독특한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할리우드 배우는 물론 아시아 스타, 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과 외모가 닮은 정자 기증인 정보를 검색할 수 있게 해 둔 것이다. 물론 실명이나 자세한 개인 신상 사진 등은 제공되지 않지만, 합법적으로 공개할 수 있는 정자 기증인 개인 정보(기증자의 번호, 키, 몸무게, 머리카락, 눈동자 색깔, 피부색, 종교, 교육 수준, 직업, 혈액형 등)를 열람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해당 유명인 본인의 정자는 당연하게도(!) 아니다. 이러한 서비스가 가능한 이유는 미국 내 정자은행은 상업적 정자은행의 용도로 먼저 등장했기 때문이다. 보통 정자은행은 암치료 전이나 체외수정을 위한 자가 정자 동결, 비배우자 수정을 위한 공여자 정자 동결 로 나뉘는데, 미국은 이러한 상업적 정자은행이 인정되어 현재 150개 이상의 정자은행에서 한 해 3만 명 이상이 출산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유명인 검색 서비스는 정자은행의 용도에 대하여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자칫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서 키우는 위대한 일을 내 입맛대로, 유명인처럼 잘 생기고 예쁜 아이를 낳기 위해 정자를 고르는(마치 인형을 고르듯) 비윤리적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것이 논란의 한 축이다. 이런 목소리들은 정자 은행을 ‘아기 백화점’ 이라 부르며 비꼬기도 한다. 정자 공여와 비배우자수정의 상업적 이용에 대해서는 여전히 찬반 논란이 뜨겁지만, 적어도 정자 은행의 상업적 이용이 불임부부는 물론 결혼을 원하지 않는 미혼모, 동성부부 등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자녀를 낳고 키우는 기회를 제공했으며 더불어 출산율 증가에 이바지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자은행에서도 이런 서비스를 할까? 대답은 당연히 No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업적 정자은행이 아예 없는 상태이다. 90년대 후반 부산대학교 병원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정자은행을 표방하고 이를 운영했으나 부산대 정자은행은 부산대학생의 정자 공여로 운영되었고, 철저히 법적 부부에게만 엄격한 조건 하에 정자를 제공했으며 이나마도 현재는 잘 운영되지 않고 있다. 출산율 증가와 불임부부들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공공 정자은행 네트워크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2014년 후반에야 시작되었다고 한다.
생명 윤리냐, 개인의 자유 및 출산율 증가냐는 수십 년 전, 정자은행에 세계에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계속되어온 논란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전 지구적 인구 부족인 때에는 정자은행에 대한 잣대도 조금 부드러워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