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에 민망한 그림을 그리는 남자
어릴 적 담벼락이나 화장실에는 지역과 세대를 떠나 꼭 공통적으로 그려지는 그림이 하나 있었다. 로켓(?) 모양 비슷하게 생긴 남성의 생식기와 알밤(?) 비슷하게 생긴 여성의 생식기가 그것이었다. 성행위를 뜻하는 비속어나 욕설, 생식기를 뜻하는 노골적인 속어를 찾아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것은 낙서를 하는 것이 보통 낮은 연령대의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어서, 반항심과 성(性)적 관심 및 호기심이 발동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짓궂은 낙서는 종종 학교 칠판에서도 발견되곤 했는데, 보통은 같은 반 남녀 친구의 이름과 함께 쓰이는 못된 장난이었다.
그런데, 다 큰 성인이, 그것도 일부러 도로에만 성기 그림을 그리고 다닌다면 어떨까?
영국의 한 거리 예술가는 스프레이 페인트를 늘 휴대하고 다니며 도로 이곳저곳에 ‘예술 작품’을 남기고 다니는데, 그의 작품은 몇몇 사람들에게는 민망하고 눈살 찌푸려질 수도 있다. 바로 남성의 심볼 모양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의 아티스트명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뱅크시(Banksy)의 철자를 살짝 바꾼 왱크시(Wanksy) 이다. (wank는 자위하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러나 그는 치기어린 반항심이나 짓궂은 키치 정신 때문에 괜히 낙서나 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그가 길바닥에 민망한 그림을 그리고 다니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구멍 나거나 패인 도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이다.
“예전에 사이클리스트인 선수가 패인 도로에서 넘어져 굉장히 심하게 다친 적이 있습니다. 그 뒤로 보수공사가 필요한 도로의 구멍들을 그냥 넘어가지 않게 됐죠. 성기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그림이 없더군요. 웃음도 줄 수 있고요. 누군가 주목하고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의 작품은 SNS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그가 의도한 효과 또한 가져오고 있다. 물론 그의 이런 노력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시에서는 그의 의미 있는 낙서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멍청하고 모욕적’이라는 것이다. 덧붙여 시는 도로를 보수해야 하기 때문에 왱크시의 남근 모양 낙서를 지우는 데는 예산을 한 푼도 쓰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등굣길에 그려진 거대한 남성 생식기를 보며 걷는 것을 기뻐할 부모들은 별로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의 노력은 어느 정도 결실을 맺고 있다. 시에서 그가 그림을 그려 둔 곳의 도로 침하 현장을 평소보다 더 빨리 보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낙서 위에 새로 덮여진 콘크리트를 찍어 올리며 ‘성공적’ 이라고 자축하기도 한다.
그의 ‘예술 작품’은 1~2주면 지워져서 사라진다. 물에 지워지는 특수한 페인트 스프레이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패인 도로에 왱크시가 낙서를 하고, 그 낙서 위에 시가 콘크리트를 새로 깔아 보수 공사를 하면, 비가 자주 오는 영국 날씨의 특성 상 얼마 안 있어 낙서는 사라지고 잘 고쳐진 도로만 남는 것이다.
그가 영국 한 도시의 도로에 가져온 여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공공기물 파손 죄나 그림의 혐오감, 공연음란죄 등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남근 그림이 쉽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림을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공공의 이익과 예술 사이의 간격을 좁히면 해결되지 않을까? ‘고추’ 대신 ‘꽃’ 등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