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밥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하루에 세끼를 밥으로 먹어도 질리지 않고, 몸이 허하거나 원기회복을 할 때도 빠짐없이 먹어줘야 하는 것이 바로 밥이다. 밥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은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초기, 중국을 자주 오가는 무역상이 중국인 아내를 얻어 혼인을 올린 일이 있었다. 국제 결혼이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일년에 절반을 중국에서 지내는데다가 무역일에 중국인 가족이 있는 것도 큰 도움이 돼서 어렵게 중국인 신부를 얻었고,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무리 글로벌화 된 지금도 국제결혼이라면 문화적 차이로 갈등하는데, 조선시대의 중국과는 더 심한 문화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여러번 중국을 방문해 중국 문화에 도통한 남자는 괜찮았지만 조선인과 혼인을 한 중국 아내의 입장은 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조선 문화도 처음이고, 조선 음식이나 조선말도 모르는 그녀가 남편을 즐겁게 해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백년 가약을 맺은 부부이니 최대한 맞춘다며 조선 말을 배웠지만 비슷한 듯 다른 두나라의 언어에 거대한 장벽을 피부로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음식이었다. 아무리 중국 산해진미를 만들어 바쳐도 남편은 좀처럼 만족하는 법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상다리 부러지게 음식을 바쳐도 계속해서 뭔가를 원하는 모습은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름진 생선과 고기를 아무리 해 바쳐도, 귀한 과일들을 구해다가 입 안에 넣어줘도 그의 심기는 늘 불편해 있었다.
결국 조선인 남편의 까다로운 입맛 맞추기는 실패로 끝났고, 그녀는 집에서 아예 쫓겨날 위기에 처해버렸다. 그녀가 남편 곁에 머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의 입맛에 맞는 조선 음식을 배우는 수 밖에 없었다. 아내는 그날로 조선 여인을 수소문 했고, 어떻게 하면 맛있는 조선음식을 만들어 남편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 연구를 시작했다.
아내의 노력에 감동한 남편은 그녀가 만들어준 조선 음식에 즐겁기는 했지만 여전히 뭔가 부족한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그는 중국인과 결혼생활이 어떠냐고 묻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깊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중국 인심이 야박한건 알았지만 집에서 밥 한번 얻어먹기가 이렇게 힘들 줄은 상상도 못했네.’
그는 분명 아내가 내오는 산해진미를 맛봤지만 밥 얻어먹기가 힘들다고 토로한 것이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중국인 색시를 험담했고, 일촉즉발로 그녀가 시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졌다.
소문을 전해들은 중국인 아내는 조선인을 가장 잘 아는 중국인 관료를 만나 울며 하소연 하기 시작했다. 분명 하루가 멀다 하고 기름진 음식에 귀한 과일들을 가져다 바치는데 왜 밖에만 나가면 밥도 못 먹고 산다고 험담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중국인 관료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한가지를 확인했다. 혹시 조선인 남편에게 밥을 주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조선인들은 아무리 진귀한 음식이 상에 올라와도 밥이 없으면 끼니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꼭 밥이 상에 올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국인 아내는 밥보다 국수를 좋아했고, 만두나 찐빵을 올렸기 때문에 충분히 밥을 대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끼니를 밥으로 생각하는 조선인 남편은 매일같이 반찬에 간식만 먹을 뿐 주식이 올라오지 않으니 굶는다고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중국인 색시는 끼니때마다 밥을 해서 올렸고, 그때 이후로는 쫓겨날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밥만큼 빵이나 부식도 많이 먹지만 한국인의 힘은 역시 밥에서 나오는게 아닌가 싶다. 지나친 탄수화물 섭취는 건강을 버릴 수도 있지만 적당히 잡곡으로 먹는다면 충분한 건강식이 될 것이다.